나는 무척 소심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꽤 신경 쓴다. 가족들이나 친구의 의견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게 편하다. 관계가 어긋나는 것보다 내 의지를 한 발 물러서는 게 나았다.
한 마디로 ‘난 아무’ 인생이었다. 점심 뭐 먹을 거냐 물어도 난 아무거나 괜찮다, 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오늘 어디 놀러 갈까 물어도 난 아무 데나 좋다, 너가 가고 싶은데 가자. 늘 그런 식이었다.
스트레스받지도 않았다. 실제로 심지가 곧지 못했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았다. 내 생각이 없었다. 누가 골라줘서 잘 따르고, 그로 인해 좋은 사람 평가까지 듣고 살아 되려 이득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생각을 감추고 살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큰 아이 6개월,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거다. 주관 없는 내가 처음부터 뚜렷한 생각을 적을 리는 없었다. 글 주제는 늘 육아 용품 리뷰나 맛집 후기, 아토피 치료 일지 정도에 머물렀다.
내 글이 아닌 만큼, 사진도 내 사진이 아니었다. 애 사진, 애가 노는 사진, 애가 옷 입은 사진, 애가 연고 바르는 사진. 아이야말로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글감이었다. 내 생각 없어도, 충분히 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블로거로서 효능감도 생겼다.
슬슬 주변에서 입을 대기 시작했다. 아이 사진 써도 괜찮은 건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싫어하면 어떡할 건지.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든지.
육아 스트레스를 육아 블로그로 해소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빼앗긴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들 아이 걱정만 해주고, 그 글을 쓰면서 행복해하는 나를 보아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내 편은 없구나.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거기에 반론을 제기할 깜냥도 없었다. 난 소심이니까.
이때부터 혁명이 시작됐다. 아이 얘기를 빼고 나면 쓸 말이 내 얘기와 책 얘기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내가 요즘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는지, 어디를 산책했는지, 살림살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쓰기 시작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림자 역할을 자처하다가, 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내 목소리', '내 생각', '내 의견'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전과 다른 삶의 방식이자, 즐거움이었다. 익명의 온라인 블로그 이웃이든,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가족과 친구이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온라인 글쓰기는 강요가 없다. 내 생각을 적어 내려 가는 일, 그뿐이다.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고, 가족과 친구, 블로그 이웃에게 '사실 전 이런 사람이에요' 알리는 일에서 끝난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하니, 가족들과 친구들이 이런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두렵고 조금 설렜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진심을 담아 쓴 글이니, 민낯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했다.
블로그에 써 내려간 내 모습을 누군가가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건물주가 꿈인 내 모습, 엄마 노릇만큼이나 내 삶을 찾으려 애쓰는 내 모습,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내 모습, 소비하는 것보다 경험과 추억을 좋아하는 내 모습,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
모두 오랜 기간 생각하며, '나'라고 생각한 것들을 써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내 모습을 누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래도 글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한 번 단 맛을 알고 나니 이 재미를 눈앞에서 떠나보낼 바보는 아니다. 끝까지 글을 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지만, 나를 싫어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니, 미움받을 용기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대신 스스로가 보기에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 글을 쓰고 싶었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써서, 스스로가 단단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아무리 내 마음대로 살아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정답이 없기에, 어떤 사람이 '단단하고 속이 깊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려나.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많이 읽고 쓰는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니 읽고 쓰는 삶은 인간관계에도 꽤 효용가치가 있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다. 불가능한 주문이란 걸 안다. 그래서 참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읽고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더 애틋해진다는 점이다. 못난 나도, 조금 멋진 모습의 나까지, 글을 통해 직면하고 받아들인다.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드디어 찾았다. 나 자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