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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Jan 01. 2020

2020년, 가계부를 안 샀습니다.

공책 두 권 살림법

돈 안 쓰고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꽤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씁니다. 


첫 번째 이유는, 편리미엄(편리+premium)을 추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돈 안 쓰고 해결하려면 시간과 노동이 들죠. 집밥과 설거지처럼요. 그래서 돈으로 시간을 사고, 단순 노동을 줄입니다. 외식이나 식기세척기처럼요. 


두 번째 이유는, 뒤쳐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남들만큼은 살아야 겠다는 마음은 지당하지만, 이 사이를 광고 산업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광고 산업으로 현대인의 소비 습관은 많이 변했어요.


그럼에도 돈 안 쓰고 해결해보려 합니다. 자립력을 기르는거죠. 이유가 있어요. 할 수 있는 일을 내 힘으로 해보지 않은 채, 돈을 쓰다보면 '진짜 필요'하지 않을 때도 소비합니다. 


청소기 없이 못 산다고 생각했는데, 빗자루를 써보니 청소기보다 편했습니다. 청소기를 쓰려면 애들이 벌려놓은 색종이 조각을 일일이 주운 후, 코드를 꼽고, 엄청난 소음과 뜨거운 먼지 바람과 함께 온 집안을 헤집었습니다. 하지만 빗자루는 쓱쓱 담으면 끝날 뿐이었습니다. 친환경 무선 청소기랄까요.


애들 방학. 눈 뜨자마자 '오늘 점심은 시켜먹어야지~' 하다가, 결국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 꺼냈습니다. 똑같은 재료로 다른 요리를 쓱싹 만듭니다. 당근, 양파에 꼬막살과 부침가루가 만나면 '꼬막전'. 당근, 양파에 돼지고기와 다진 파, 다진마늘이 만나면 '볶음밥'. 꼬막살에 다진 파와 다진 마늘 만나면 '꼬막 무침'. 귀찮을 거 같은 집밥도 해보니 다릅니다. 대충 차려도 영양 과잉이란 마음으로, 언제나 최선을 다해 대충 차리죠.



2020년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가계부 자급자족'을 도전 중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고, 공책에 재무 흐름을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12월 동안 써 봤어요. 온갖 불필요한 정보들이 나열된 유상 가계부보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해서요. 정말 필요한 내용만 적으면 되니까요. 


돈 주고 바꾸는 일을 제 힘으로 해내는게, 21세기 도시형 자급자족이라 믿어요. 빗자루와 집밥처럼 말이죠. 여러분도 2020년, '가계부 자급자족' 해보시겠어요? 


공책 두 권 살림법, 지금부터 알려드릴게요. :-)


1. 준비물: 공책 두 권 = 통계 공책+하루 식비 공책


공책 두 권을 마련했습니다. 한 권은 월간+연간 지출 통계 공책이고, 다른 한 권은 하루 식비 공책이에요. 


2. 월간+연간 지출 통계 공책에 쓰는 것 

: 버킷 리스트, 자산, 월간 지출 분석, 연간 재무 흐름표


월간+연간 지출 통계 공책. 줄여서 '통계 공책'이라 부르겠습니다. 이 공책은 기존에 제가 쓰던 가계부에서 잡다한 정보를 뺐어요. 미니멀한 가계부인 셈입니다. 


돈을 어떻게 썼는지, '분석'하는게 가계부를 쓰는 이유잖아요. 그간 제가 가계부를 샀던 이유기도 하고요. 잘 정리된 틀에 지출 분석과 통계를 내기 위함이었죠. 그러니 딱 이 기능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뺐습니다. 가계부가 두꺼울 이유는 없습니다.


1) 버킷 리스트


통계 공책 제일 첫 장에 씁니다. 자주 들여다보면 힘이 나니까요.


(2020년 목표는 복직한 워킹맘이지만, 육아휴직 때처럼 사는겁니다. 시간 부자일 때 하던 일을, 워킹맘으로서도 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자산


매월 적습니다. 자산은 1년에 한 번 적지 않아요. 한 달, 한 번 통계를 내다보면, '현실 감각'이 살아납니다.


'이 정도면 돈이 필요할 때, 돈이 있겠구나.'

'이 자산이면 정작 돈을 써야할 때, 돈이 없겠는데?'


'이 돈이면 올해는 어디에 투자할 수 있겠다.'

'아직 투자는 이르네. 돈을 더 모아야겠다.'


하고 상황 판단이 섭니다. 매월 적는 자산, 의외로 중요합니다.


금융자산, 부동산, 기타 자산을 모두 적습니다. 그리고 이 자산의 가치를 모두 합한 '총 자산'과 쉽게 융통할 수 있는 '유동 자산'도 분리해둡니다. 왜냐하면 다음 투자를 하려면, 유동 자산 얼마가 더 필요한지 계산하기 쉽거든요.


3) 월간 지출 분석


월간 지출에는 네 가지를 적습니다.


1. 고정 지출: 관리비, 가스비, 보육비, 통신비, 정수기, 보험

2. 기타 지출: 부부용돈, 가족곗돈, 급식비, 친화회비, 경조사

3. 변동 지출: 식비, 생활비(의료, 의류, 교통, 유류, 여가, 잡화, 육아)

4. 저축


이 중, 고정 지출과 기타 지출 중, 월급 날 적을 수 있는거 미리 다 적습니다. 못 적은 내역들은 지출 발생 후 그 때 그 때 적어요.


변동 지출은 월급 전날 적습니다. 대신, 두 권의 공책 중 하나였던 '하루 식비 가계부'에 매일 기록하죠. 


저축은 기본적으로 월급 받은 날 선저축 합니다. 한 달 예산 빼고 남는 돈을 모두 밀어넣어요.

다음으로 보너스나 출장비, 강의비 등 부가 수익을 얻으면 또 적금 통장에 밀어넣어 저축합니다.


4) 연간 재무 흐름표


매월 총 자산과 총 지출, 그리고 저축을 기록해갑니다. 1년의 기록을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가계부를 쓰는 두 가지 이유. 바로 '기록'과 '분석'입니다. '통계 공책'은 이 중, '분석' 역할을 맡은 녀석이죠. 




2. 하루 식비 공책


쓰고 버리는 공책입니다. '봉투 살림'처럼 '하루 예산' 단위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록하는거에요. 봉투 살림은 봉투에 현금을 넣어야 해서,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봉투 살림의 핵심 목표, 즉 '하루 예산으로 산다'를 공책에 옮긴겁니다. 


공책의 반을 접어, 왼쪽은 식비 기록. 오른쪽은 생활비(의료, 의류, 여가, 교통, 유류, 잡화, 육아)를 적습니다.



하루 예산 가계부를 쓰는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https://dahyun0421.blog.me/221641432736


예전에는 의료비, 의류비, 여가비, 교통비, 유류비, 잡화비, 육아비. 모두 각각 예산을 잡았어요. 하지만 이젠 하나로 통틀어 '하루 예산 15000원'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니 한 달 생활비는 식비 빼고 45만원인 셈이에요. (식비까지 모두 하면 90만원)


생활비 하루 예산의 장점은, '번 돈 보다 덜 쓰는 소비 습관'을 들이게 합니다.


어느 달에는 의료비가 더 나갈 수 있을거에요. 그러면 그 달은 옷을 덜 사거나, 체험비 드는 여가를 줄여야 해요. 더 쓰는게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번 달은 지출이 많다'가 아니라,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이는거죠. 겨울 옷을 마련하느라 의류비가 더 나갔다면, 그 때는 택시를 덜 타야 하는 겁니다.



오늘은 다짐하기 좋은 1월 1일입니다. 사실은 12월 29일부터 다짐해도 됩니다.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으니까요. 마음이 움직이고 동동거리며 의욕이 솟는 그 때. 딱 그 때가 시작하기 좋은 날입니다. 이 포스팅을 보는 여러분의 마음처럼요. :-)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중, 모지스 할머니


2020년, 가계부를 쓰는 이유.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해.

절약하면 제일 좋은 거. 역시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입니다. 적게 써도 충분히 재밌게 사는 요령을 터득하는게 절약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번 돈 보다 적게 쓰면서도 즐거운데, 잉여 자본이 남습니다. 이렇게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쌓아두는 자본금은 가족과 나의 삶에 안정감을 줍니다.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거죠.


검소하게 살면, 생각한 대로 살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로 매일을 꾸릴 수 있지요.


그래서 여러분 께서 2020년에는 가계부를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적당히 벌고 덜 쓰는 삶'의 기본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신에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그것은 가령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이 없어진다거나 그 일로 보수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당신은 과연 그 일을 하고 싶으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 <돈이 필요 없는 나라> 중, 나가시마 류진 지음

베란다에서 본 일출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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