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최다혜 Jan 11. 2020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휘둘리지 않는 사람, 절약가

시누가 왔다. 동해에 오게 되면 서호책방에 꼭 함께 가자며 카톡을 나누다가, '그럼 당장?'이란 호쾌한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시누는 중요한 일을 마무리하고 당장 동해로 왔다. (여러분, 서호책방의 매력이 이렇게 어마어마합니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 읽고 글 쓰다가, 점심 무렵이 됐다. 맛있는 것만 주고 싶은데, 내 집밥이야 나한테나 맛있지 남들한텐 아니다. 그래서 점심은 남편이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위해 사주기로 했다. 


"뭐 먹을까?"

"한식 먹고 싶어. 오빠네 평소 가는데 가자."

"..."


평소 가는 데가 잘 없다. 특히 한식은 더더욱 그렇다. 집에서 별 짓을 다 해도 맛이 없는 파스타야 밖에서 사 먹는 편이지만, 집에서 해도 비슷한 맛이 나는 한식은 정말 사 먹는 일이 드물다. 결국 동해 사람이, 동해 한식 맛집을 인터넷으로 뒤졌다.


검색해도 잘 모르겠다. 에잇. 연애할 때 종종 가던 낙지집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갔다. 많이 달라졌다. 사장님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많이 어수선했다.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후드를 켜면 지진이 난 듯, 식탁이 달달 떨렸다. 반찬을 받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도 종업원은 음식을 달칵달칵 내려놓고 시크하게 답 없이 휑하게 떠났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었지만 민망했다. 동해 맛집 모르는 동해 사람이 감수해야 할 민망함이었다.



하루 식비 15000원으로도 4인 가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풍성한 집밥 단가를 알고 나면, 외식을 주저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는 밥하기 귀찮고 피곤해서 자주 외식하고 배달음식 시켜먹었다. 돈 보다 중요한 게 나의 안락과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땐 가계부도 쓰지 않거나, 엉성하게 어플 가계부를 썼기 때문에 얼마를 쓴 지는 잘 모른다. 대충 가늠했을 때 8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를, 한 달 식비로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둘 낳고 나니, 이 돈만큼 외식하고 배달음식 시켜먹으려면, 맞벌이를 해야 했다. 외벌이를 하면서 안락과 시간을 돈 주고 사려면 저축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투적으로 집밥 했다. 필사적으로 물건을 안 샀다. 키즈카페 문턱을 넘지 않으려 했고, 입장료 있는 여가 활동을 자제했다. 돈 쓰는 일을 줄여 나갔다. 그땐 그게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돈 안 쓰는 일에 매달렸다.


신기하게도 3년 절약해보니, 이 일도 몸에 익었다. 그렇게 절실하게 매달리던 절약은 일상이 됐다. 조금 더 담담해졌다. 집밥이 편하고, 물건에 사는 게 재밌지도 않고, 아이들이 점점 자라 키즈카페 도움 없이도 둘이 잘 놀게 되었다.


힘들더라도 해볼 만한 게 돈 덜 쓰는 삶인 줄 알았는데, 절약도 계속하니 어렵지 않았다.



절약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자본주의에서 점점 유리한 사람이 되어갔다. 돈을 덜 쓴 만큼 잉여 자본이 남는다는 점에서도 유리했지만, 적은 돈으로도 불편함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은, 결국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돈 중요하지? 그러니까 너는 이 일, 못 쉬어.'

'나는 너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금전적으로 유리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하기 싫은 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구태여 애써 하거나 만나지 않아도 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시 돈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치사함이고, 자본주의에서 내가 소진되어 가던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당당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은 절약이었다. 돈 덜 쓰는 삶. 단순하고 간소한 삶. 자발적인 결핍을 힘들이지 않고 이어나가는 그런 삶.


적은 돈으로도 저축까지 하면서 100세 인생까지 준비할 수 있는 요령을 갖추니, 사회의 압력과는 달리 조금 더 도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면, 하고 싶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고,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면 무급 육아 휴직도 불사했다. 돈 안 받고도 절약 모임, 글쓰기 모임을 이어갔다. 이웃 언니들의 아이 문제집을 채점해 줄 수도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귐에 있어 밥 사 줄 껄 기대하기보다, 그 사람과의 시간, 대화가 더욱 소중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은 돈에 담담한 사람이다. 돈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사람 말고, 최소한 휘둘리지 않는 사람 정도도 괜찮은 것 같다.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긴 힘들어도, 삶의 유지비가 적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 기본은 집밥이다. 청소를 내 힘으로 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옷가지의 수를 알고, 딱 그만큼만 갖고 있는 태도다. 의외로 별 거 아닌 생활의 자립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 되는 토대였다.


거대하고 두려운 사회의 흐름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역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성을 갖추고, 실천력을 갖춘, 만물의 영장, 인류 말이다. 누구나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절약. 절약 고수가 되면 될수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리하다. 


그래서 하루 식비 5천 원으로도 거뜬히 살아가는 분들이 부럽다. 스스로 책방 가구를 짜 맞추고, 간판마저 만들어 붙이던 서호 책방 지기들을 존경한다. 자립이 되니까.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본받고 싶다. 그래서 더욱 자유로워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촌뜨기라서 그런가보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