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에 10억씩이나 필요할리 없다는 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전투적으로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가진 물건이나 차림새로 사람을 재단하는 새로운 계급주의에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데, 어째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 해 만삭의 몸으로 꾸역꾸역 일터로 갔던건지.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볼 수는 없다고 했던가. 더 쉬운 말로는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 했던 나는, 실은 나야말로 남에게 눈치를 주고, 멋대로 평가했던건 지도 모른다. 돈과 노동, 시간에 대해 고민했던 나는, 사실 돈을 더 많이 벌고 소비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던건 지도 모른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꿈꿔봤다. 40살까지 10억을 버는 시나리오를 구상해봤기 때문에 노동하고 소비하는 삶의 치명적인 약점까지도 알고 있었던거다. 일단 극단적으로 절약하고, 많이 일 해서 종잣돈을 두둑히 마련한다. 투자해서 꾸준한 수익을 얻는다. 그 수익을 다시 투자해서 수익을 배로 늘린다. 배로 늘어난 수익을 다시 투자해서 수익에 트리플 콤보를 먹인다.
보통 사람인 내가, 40살까지 10억을 버는건 결국 많이 일하고 적게 쓰는 길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남기고 싶어하는 거라고는 타인에게 보여줄만한 물건이나 서비스일 뿐이란 것 또한 알았다. 만약 내가 돈 쓰는 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구태여 40살에 10억까지나 필요할리 없다는걸 좀 더 일찍 깨달았을거다. 풍성한 하루, 질좋은 양육, 좋은 먹거리와 풍요로운 경험을 하는 데, 숨만 쉬어도 나가는 지출을 모두 합하여 한 달 230만원이면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한 달 230만원. 우리 집에 맞는 행복의 제한선을 몰랐을 때는 체한듯 속이 멨다.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실험하듯 글을 쓰고, 쓴 대로 살아 보았다. 3년 정도 걸렸다. 그 결과가 읽고, 쓰고, 뭐든 건강한 두 손 두 발로 직접 해보며, 그리고 하루 식비 15000원이라는 지출에 선을 그어 욕망에 제한선을 거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소비>를 연재하면서, <최소한의 소비>를 가장 갈망하던게 바로 글쓴이, 나 자신이었다. 적당히 벌고 적게 쓰는 삶. 있으면 있는 대로 안 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또 안 쓰는 그런 삶.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들만 잘 남겨둘 수 있는 그런 삶. 꿈꾸던 삶이었기에, 하루 식비 15000원이라는 초보적인 실천만 해도 기뻤다.
절약도 자꾸 하니 익숙해졌다. 태평하다. 편안하니 불안했다. 하고 싶은 말이 줄어들었다. 절실하지 않으니, 바락바락 외칠 일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편안해졌다.
요즘, 할 말 없는 내 상태에 당혹스러웠다. 하루 식비 15000원이 너무 많은가? 왜 이렇게 쉽고 편하지? 하루 식비를 더 줄여볼까? 내 삶을 더 간소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다.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삶의 유지비가 줄어들수록 나는 더욱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질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절약을 더 잘 하려 애쓰는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나의 계획은 아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생계 수단은 지금 거의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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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최선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가장 적은 돈으로 그 일을 해라. 그래야만 돈을 마련하는 수고에 비해 좀 더 나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소로의 일기>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어제처럼 밥 해 먹고, 산책하는 그런 하루들을 살아가고 기록하면 되는거 아닐까. 요즘이야 말로 절실하게 바라던 삶이다. 지금 이 정도의 태평한 간결함 속에서 편안하고 싶다. 딱 이 정도의 절약으로도, 먹고 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악다구니 쓰던 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소중한 하루다.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태평하면 어떤가. 할 말 없으면 어떤가. 할 말 없음을 이렇게 또 글로 쓰고 있는데(하하).
딱 좋다. 오늘도 어제 같길. 그리고 내일도 오늘 같길. 내가 바라는 건 딱 그 정도의 오롯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