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Jan 11. 2020

많이 일하고 조금 쓰는게 나의 계획은 아니다.

40살에 10억씩이나 필요할리 없다는 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전투적으로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가진 물건이나 차림새로 사람을 재단하는 새로운 계급주의에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데, 어째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 해 만삭의 몸으로 꾸역꾸역 일터로 갔던건지.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볼 수는 없다고 했던가. 더 쉬운 말로는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 했던 나는, 실은 나야말로 남에게 눈치를 주고, 멋대로 평가했던건 지도 모른다. 돈과 노동, 시간에 대해 고민했던 나는, 사실 돈을 더 많이 벌고 소비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던건 지도 모른다.


다 읽고 지인에게 주었던 보도섀퍼의 <돈>. 처음 절약을 시작할 때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반가웠다. 40살에 10억 부자가 되고 싶었던, 29살의 흔적이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꿈꿔봤다. 40살까지 10억을 버는 시나리오를 구상해봤기 때문에 노동하고 소비하는 삶의 치명적인 약점까지도 알고 있었던거다. 일단 극단적으로 절약하고, 많이 일 해서 종잣돈을 두둑히 마련한다. 투자해서 꾸준한 수익을 얻는다. 그 수익을 다시 투자해서 수익을 배로 늘린다. 배로 늘어난 수익을 다시 투자해서 수익에 트리플 콤보를 먹인다.


보통 사람인 내가, 40살까지 10억을 버는건 결국 많이 일하고 적게 쓰는 길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남기고 싶어하는 거라고는 타인에게 보여줄만한 물건이나 서비스일 뿐이란 것 또한 알았다. 만약 내가 돈 쓰는 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구태여 40살에 10억까지나 필요할리 없다는걸 좀 더 일찍 깨달았을거다. 풍성한 하루, 질좋은 양육, 좋은 먹거리와 풍요로운 경험을 하는 데, 숨만 쉬어도 나가는 지출을 모두 합하여 한 달 230만원이면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한 달 230만원. 우리 집에 맞는 행복의 제한선을 몰랐을 때는 체한듯 속이 멨다.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실험하듯 글을 쓰고, 쓴 대로 살아 보았다. 3년 정도 걸렸다. 그 결과가 읽고, 쓰고, 뭐든 건강한 두 손 두 발로 직접 해보며, 그리고 하루 식비 15000원이라는 지출에 선을 그어 욕망에 제한선을 거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소비>를 연재하면서, <최소한의 소비>를 가장 갈망하던게 바로 글쓴이, 나 자신이었다. 적당히 벌고 적게 쓰는 삶. 있으면 있는 대로 안 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또 안 쓰는 그런 삶.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들만 잘 남겨둘 수 있는 그런 삶. 꿈꾸던 삶이었기에, 하루 식비 15000원이라는 초보적인 실천만 해도 기뻤다.


아이랑 같이 플랭크 하고, 맛있는 커피 마시러 책방 가고, 산책을 하다가 해 주위로 해무리와 채운(무지개 구름)을 보는 일. 나한테 필요한건 딱 이 정도의 일상이었다.

절약도 자꾸 하니 익숙해졌다. 태평하다. 편안하니 불안했다. 하고 싶은 말이 줄어들었다. 절실하지 않으니, 바락바락 외칠 일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편안해졌다.


요즘, 할 말 없는 내 상태에 당혹스러웠다. 하루 식비 15000원이 너무 많은가? 왜 이렇게 쉽고 편하지? 하루 식비를 더 줄여볼까? 내 삶을 더 간소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다.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삶의 유지비가 줄어들수록 나는 더욱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질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절약을 더 잘 하려 애쓰는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나의 계획은 아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생계 수단은 지금 거의 마련되어 있다.

...

돈으로 최선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가장 적은 돈으로 그 일을 해라. 그래야만 돈을 마련하는 수고에 비해 좀 더 나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소로의 일기>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어제처럼 밥 해 먹고, 산책하는 그런 하루들을 살아가고 기록하면 되는거 아닐까. 요즘이야 말로 절실하게 바라던 삶이다. 지금 이 정도의 태평한 간결함 속에서 편안하고 싶다. 딱 이 정도의 절약으로도, 먹고 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악다구니 쓰던 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소중한 하루다.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태평하면 어떤가. 할 말 없으면 어떤가. 할 말 없음을 이렇게 또 글로 쓰고 있는데(하하). 


딱 좋다. 오늘도 어제 같길. 그리고 내일도 오늘 같길. 내가 바라는 건 딱 그 정도의 오롯한 행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