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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Jan 13. 2020

맥시멀한 너희를 위한 나의 미니멀

미니멀해지고 또 미니멀해져봤자, 너희는 맥시멀하고 또 맥시멀해진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소한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힘 센 사람의 도구가 아닌, 아무나의 표현법으로서 글쓰기를 옹호한다. 쓰는 사람 편을 든다.


그래서 내 딸들이 그런가보다. 언어가 없으니 그렇게 그림을 그려대나보다. 4살, 6살, 어린 문맹들에게 그림이야말로 '아무나'의 표현법이다. 언어를 갖지 못 한 유아들의 표현법.


미치겠다.


싸인펜과 연필만 있으면, 이제 나도 맥시멀리스트 꿈나무 :-)


며칠 전에는 벽에다 그림을 그리더니, 어제는 골방형 대지미술이다. 방바닥에 '노마르지' 싸인펜으로 진창을 해놨다. 마르지 않는다더니, 엄청난 유분과 수분을 동시에 머금은, 초강력 싸인펜이었다. 네다섯번을 왕복하여 닦고 나서야 겨우 다 닦았다.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 미니멀해지고 또 미니멀해진다. 그러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은 다 치웠다. 텔레비전도, 높은 책장도, 미련이 남았던 딱 붙는 원피스들과 화장대까지.


하지만 내가 아무리 미니멀해지고 또 미니멀해봤자, 우리집 천둥벌거숭이들은 맥시멀해지고 또 맥시멀해진다. 돈을 벌지 못 하니, 물건을 사들이진 않는다. 하지만 고작 싸인펜과 연필만으로,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방법을 안다.


가끔은 책장에 꽂힌 책과 편백나무 배개, 그리고 옷장에 정리되어 있던 옷과 에코백에 모아두었던 퍼즐조각도, 4세, 6세 맥시멀리스트들이 '집안을 맥시멀하게!' 만드는 단골 방법이다.


얘네는 사사키 후미오(<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가 살고 있는 방에 가서도, 맥시멀리스트가 될 아이들이다. 다다미를 뜯어내고, 몇 벌 없는 옷으로 썰매를 타겠지. 어마어마한 녀석들!


상상초월

이 깜찍한 맥시멀리스트들이, 사실 내가 완전무결한 미니멀라이프를 살 수 없는 이유들이다. 물건 저지레를 말하는 거냐고? 아니다. 


편백 나무 배갯속을 헤집어, 안방을 키즈카페 '편백룸'으로만드는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나는 부모의 절대적 사랑에 확신을 갖고 싸인펜을 칠해대는 이 아이들이, 단순한 호의만으로 돈과 밥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나는 나로 살 때는 현재를 살지만, 엄마로 살 때는 미래를 본다. 앞날을 자주 걱정하게 되고, 어떻게든 예측해보려 애를 쓴다. 그래서 순수한 미니멀리스트로만 살 수가 없다.


나는 나로 살 때는 독신이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강원도 산골짝에 오두막을 짓고 먹거리를 자급하며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엄마로 살 때는 강원도 동해에서 가장 학군 좋은 아파트에서 마트에서 두부를 산다.


1851년. 소로가 34살 때. 그는 기차를 보며 불안해 하는 농부들을 본다. 농부들은 밭을 갈고 있는데, 철길을 달리는 기차에는 사업가와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농부들은 시대의 흐름을 놓칠까봐 불안해 한다. 그래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웃사람들이 너나 없이 큰길로 몰려갈 때 큰길과 무연하게 살만한 인품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다면 거기에 끼어들려고 안달하지 않을 것이다.


- <소로의 일기>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소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몰라도 됐다. 그에게는 미래를 이어갈 아이가 없었으니까. 온전히 살아가는 당시의 법칙에서 살아가면 됐다.


시대가 흐를 수록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법칙은 흐트러졌다. 아무리 고된 육체 노동을 해도, 가난이 거듭됐다. '게으르니 가난하다'가 아니라, 시대가 값을 후하게 쳐주는 산업에 뛰어들지 않으면, 가난한게 요즘 세상이다.

가능한 미니멀하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절충한다. 도 닦는 선승처럼 온전한 무소유를 실천하기 어렵다. 미니멀의 끝에는 경제적 안정감도 있다. 온전히 내적 자유만을 위해 미니멀하지 못 하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음으로서 오는 잉여 자본을 꾸준하게 축적하고 투자도 한다. 


제대로 된 미니멀리스트였다면, 남는 자본을 기부라도 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아이가 없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너나 없이 큰길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나는 큰길 너머 무엇이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유발 하라리 등 세계 석학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초예측>을 읽게 된다. 


유발 하라리, 제러드 다이아몬드, 린다 그랜튼, 닉 보스트롬 등은 "돈을 있는대로 다 쓰지 말라"고 한다. 소비해서 탕진하지 말고, 꾸준히 모아 자산을 축적하라 한다. 투기를 하라는게 아니라, 나와 가족을 꾸준하게 지킬 수 있는 안정 자산을 담보해두라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류를 위해 흘러가지 않으니, 각자 현실적인 자기 돌봄을 하라는거다.


유발 하라리: "자기 몸이나 감각이 눈앞에 있는 현실과 만나지 못한다면(돈에 구속되어 진정한 목적을 잃음. 핸드폰, TV, 광고, 영화에 집착) 정신은 방황하고 행복한 삶도 누리기 어려워집니다."


- <초예측> 중. 유발 하라리 등 지음.

물론 그렇다고, 많이 일하고 조금 쓸 생각은 없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아서 빨리 부자 되어야 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부자'라는 타이틀 빼고 삶에 남는게 없었다. 무지하게 힘들기만 했다. 부자가 됐다면 생각이 달라졌을까? 어쩌면 마지막 1도를 남기고, 99도에서 불을 꺼버린, 멍청한 포기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이 좋은건, 절약해서 얻은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간과 자유다. 앞으로도 적당히 일해서 적당히 벌고, 조금 써서 잉여 자산을 남길 생각이다. 


절약해서 남는 돈은, 소로에게는 없던 4살, 6살짜리 맥시멀리스트들의 앞날을 위한 돈이다. 이 돈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줄어들 일자리에 아이들이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내팽겨쳐지지 않도록, 완충해주고 싶다.


적당히 일해서 남긴 여가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조용히 정신을 발전시키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미니멀해지고 미니멀해질 것이다. 줄이고 비우려는 엄마 옆에서 터져나갈 듯 맥시멀한 두 아이를 위한, 현실적인 미니멀을 거듭할 것이다.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맥시멀한 너희를 향해 성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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