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욕심이 안 난다.
공공재
주말, 강릉 경포호에 다녀왔다. 넓은 산책로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주변의 습지를 구석구석 걸었다. 나룻배를 만났다. 밧줄을 잡아당겨 습지의 끝에서 끝으로 배를 탈 수 있었다. 연못 위에 실잠자리가 알을 낳고 있었고, 소금쟁이 여러마리가 뛰어다녔다. 애들은 좋다고 나룻배를 왕복하며 5번이나 넘게 탔다.
"뭐야! 이게 뭔데 이렇게 좋은건데!"
애들 뒤만 쫓아가도 좋았던 경포호. 여기는 내 정원이 아니다. 언젠가 잃어버릴 사유재산이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두의 재산이다. 입장료 하나 없이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조선시대 임금님보다 더 나은 여가를 즐긴다. 이러니 구태여 내가 훌륭한 개인 정원을 갖추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 없다.
집 안에 모든 것을 갖출 필요 없다. 여기는 한국이기 때문이다. 함께 거닐 수 있는 공공시설들이 잘 되어 있다. 살다보니 때가 되어 잔디밭 갖춘 집에 살 수도 있겠지만, 잔디밭 갖춘 집에 살기 위해 맹렬하고 빠르게 돈에 골몰할 필요는 없다. 느슨해도 좋다. 한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서 꽤 만족스럽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으리으리한 정원 갖춘 집을 갖기 위해 몸과 마음을 소진하는게 아니라, 세금을 잘 내면 된다. 한국이 좋아서. 나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욕심이 안 난다.
도시의 공적인 공간이나 시설이 그 자체로 훌륭할 때에도 개인적 영광에 대한 야심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 그냥 평범한 시민이 되는 것이 괜찮은 운명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불안> 중, 알랭드 보통 지음
문제는 맞벌이가 아니야
작은 집에 적은 물건으로 산다. 하지만 더 들이고 싶은 가구나 가전도 없고, 더 들여야 할 물건도 없다. 오히려 버리고 비워낼 물건들이 남아있다. 미련이 남은 옷들, 언젠가 쓸 줄 알았던 깨끗한 새 물병, 글감이 될까하여 정리하지 못 한 수북한 책더미들. 심지어 둘째가 기저귀를 뗀 지 서너달이 지나도록 혹시나 필요할까봐 새 기저귀 두 팩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여분의 좋은 옷과 물병과 책들, 때로는 식재료까지 이웃과 나눈다. 남아있던 기저귀도 아이 어린이집에 기증했다. 고맙게도 나는 집이 비워져서 좋고, 고마운 마음을 받아서 한 번 더 좋다.
요즘은 계속해서 비우고 있다. 가차없이 비운다. 기준은? 있으면 편리할거란 '예상'과 '기분'을 주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십중팔구 내 시간과 힘을 다 뺏어버린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으니, 분명 맞벌이다. 복직하기 전에는 지레 겁을 먹고, 생활비 예산 늘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체력이 부치니 돈 주고 밥도 사먹고, 시간과 체력을 아껴줄 가전이 필요할테니, 저축을 조금 줄이더라도 생활비를 쓰려 했다.
웬걸. 건조기를 들이기는 커녕 손빨래 하며 산다. 외식은 커녕 상추씨를 심었다. 체력도 거뜬하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서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휴직 때처럼 하루 30분 넘게 책을 읽고, 하루 한 편 글도 쓴다. 심지어 책 읽으면서 수세미도 뜬다.
비워낸 덕분이다. 있으면 편리할거란 '예상'과 '기분'을 주는 것들을 모두 비울뿐더러, 당연히 더 소비하지도 않는다.
가장 큰 성과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지운 일이다.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줄 알았던 온갖 뉴스거리와 웹툰은 도리어 자꾸 사람을 무기력하게 했다. 뉴스와 웹툰을 한 번 보면 1시간도 훌쩍 지나가지만, 정작 성취감이나 생산성을 느낄 수 없어 허무할 뿐이었다. 심지어 학교폭력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기를 쓰고 미화하는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책 읽고, 손빨래하고, 가계부를 쓰는 1시간은 왜이리 더디게 가는지. 지루해서가 아니다. 뉴스와 웹툰이 시간 도둑이었을 뿐이다. 자극적이지만 아무것도 남는게 없어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시간 도둑말이다.
당연히 인터넷 쇼핑도 하지 않는다. 필요한 물건은 동네 마트에서 산다. 동네 마트에서 질좋은게 없을 때 (귀찮지만) 인터넷 쇼핑을 한다. 옷도, 잡화도 그냥 있는거 쓴다. 없어야 산다. (때로는 없으면 만든다. 상추를 심거나 수세미를 뜬다. 고장나도 제기능을 하면 그냥 쓴다. 발목 부러진 빨래 건조대처럼.)
화장도 잘 하지 않는다. 씻고 로션 바르고 썬크림 바르면 끝이다. 처음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어색하고 땀이 났지만, 주변 동료들도 내 민낯에 적응한다. 덕분에 화장에서 자유롭다. 꾸밈을 좋아하지 않으니, 화장 안 해도 되는 나날에 신이 난다.
게다가 내가 가르치는 고학년 아이들은 '꾸밈압력'을 받는다. 꾸미지 않으면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한다. 꾸미고 싶지 않아도 꾸며야 하는 또래와 미디어의 압력에 독한 화장품을 바른다. 그래서 더더욱 애써 화장을 안 하려 한다.
"얘들아! 화장, 그거 꼭 해야 하는거 아니야! 선생님도 봐봐. 안 하잖아. 잘만 살잖아. 화장은 '하고 싶을 때 하는' 즐거운 선택일 뿐이야! 화장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할게. 하지만 화장 안 해도 상관 없다는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어."
문제는 맞벌이가 아니었다. 비워내고 단순해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바쁘지 않다. 풍요로운 시간 속 행복하게 산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아이 둘 키우는 맞벌이 미니멀리스트도 여느 미니멀리스트와 다름 없이 산다.
잃을게 많다.
나는 보수적이다. 잃을게 많아서 그렇다.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건 돈이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다. 건강과 자연, 시간과 아이들, 그리고 남편과 책, 글이다.
이 모든걸 지키기 위해 보수적으로 산다.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녹황색 채소를 더 열심히 챙겨먹고, 자연을 지키고 싶어 세탁기를 덜 쓰고, 비누로 세수하고 머리도 감는다. 시간을 흘리기 싫어 웹툰을 끊고 뉴스를 안 보고 있으며, 이렇게 남는 시간에는 집밥도 해먹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물론 육아는 언제나 어렵다. ㅠㅠ) 남편의 따뜻함이 영원하길 바라기에 서로 배려해주고 애정어린 말을 나누며, 책과 글을 놓치기 싫어서 새벽 시간은 늘 책 읽고 글쓰는데 바친다.
돈과 재산을 지키는 보수파가 될 수도 있다. 돈과 재산은 생명이나 다름없기에 당연히 보수적으로 지켜야 한다. 워렌 버핏이 말했지 않나. 투자의 제 1원칙은 '잃지 않기'고, 투자의 제 2원칙은 '반드시 제 1원칙을 지키기'라고.
그런데 건강, 자연, 시간, 아이들, 그리고 남편과 책, 글을 진심으로 지키다보면 돈과 재산은 자연스럽게 지켜진다. 왜냐하면 건강을 비롯한 지속가능한 가치들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삶을 사랑하는데 돈이 들지 않으니, 돈이 모인다. 물론 적극적 투자를 하지 않으니 부자는 못 된다. 하지만 100살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가족, 친구와 웃으며 책 읽고 커피마시며 글 쓸 정도 돈은 남는다.
잃을게 많다. 사랑할게 많아서 좋다.
블로그에는 매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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