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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May 31. 2020

맞벌이 절약,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2019년, 육아휴직 중 살림하면서 문득문득 궁금했다.


'내년에 복직해도 지금처럼 돈 덜 쓰며 살 수 있을까?'


당시 나는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집밥을 먹었고,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썼으며, 발목 부러진 빨래 건조대를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쓰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자원 삼아 절약하며 살았다. 여유로운 가운데 빗자루질은 노동이나 고생이라기 보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조용한 명상 시간이었다. 햇볕과 바람에 빨래를 너는 일도, 식재료를 다듬는 일들도 모두 학교로 나가 유급 노동을 하지 않은 덕에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겪어봐야 안다. 휴직자가 워킹맘을 논하면, 그건 선을 넘은거다.


겪어보지도 않고 '나라면 잘 할텐데.'하며 자신감을 가진 적도 있었다. 아이를 낳아보기 전이었다. 카페에서 애들이 핸드폰 보고 부모는 커피를 마실 때 혀를 찼다.


'나는 애 낳으면 절대 핸드폰 안 쥐어줘야지. 예절 바른 아이로 키울거고, 조용히 음료 마시는 법을 연습시킬거야.'


해보기 전에는 잘 할 줄 알았다. 예의는 한 번 가르친다고 한 번 익혀지는게 아니었다. 숲에 없는 길을 만들 듯, 수 천 번을 가르쳐야 겨우겨우 한 가지를 해냈다.


육아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면, 모르는 세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해 봐야 안다는걸. 내가 그 세계에 몸 담아야 비로소 말 할 자격이 생긴다는 걸. 엄마 아닌 자들이 쏘아대는 맘충 소리 들으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카페에서 조용히 커피 마시는 일이 '엄마의 노력'에 달려있을 줄 알았다. 개뿔 아니다. '커피 마시기를 포기한' 엄마의 노력, 혹은 아이 손의 핸드폰에 달렸다


맞벌이 부부의 절약에 대해서도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내가 맞벌이가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절약을 논할까. 작년까지 나는 논할 자격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절약글의 전제조건으로 '외벌이'이를 자주 언급해야만 했다. 물론 외벌이를 가능케 했던 것 또한 절약이었다. 남편이 돈을 벌고 나는 아이들을 돌봤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고 물건과 서비스를 지불할 일이 적었다. 오히려 절약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4년이나 이어가며, 맞벌이를 멈출 수 있었다. 돈 덜 드는 삶은 일 덜 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글을 쓸 때는 해본 얘기만, 할 수 있는 얘기만 썼다. 


그럼에도 맞벌이 부부가 마음에 걸렸다. 외벌이인 우리 부부의 삶을 건네 들으며 불편해 할까봐 걱정됐다. 시간이 부족하실텐데, 외벌이란 우리집 사정에 빗대어 너무 가혹하게 절약할까봐 미안했다. 그래서 종종 덧붙이는 글들을 썼다.


'저희는 외벌이이기 때문에 외식도 줄이고, 최신 가전제품도 안 살 수 있는거랍니다. 부디 맞벌이 여러분들께서 너무 가혹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는 마시길' 


라는 말을 조용히 남기며, 맞벌이와 외벌이의 상황이 다름을 알렸다. 


그래서 올해를 많이 기다렸다. 2020년, 긴 육아휴직 끝에 복직했다. 남들 출근할 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하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최소한의 소비, 맞벌이 버전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뇌피셜 절약(머릿속의 생각인데도 검증된 냥 말하는 행위) 말고 발피셜, 손피셜 절약글을 쓰고 싶었다. 


이제 맞벌이 만 세 달째. "맞벌이, 절약 가능하냐?"는 2019년의 나의 질문에, 2020년의 내가 답을 하자면, "가능하긴 하지."다. 우린 여전히 하루식비 15000원과 하루생활비(의류, 의료, 유류, 교통, 잡화, 여가) 15000원으로 살고 있으니까.


복직 후 월급을 세 번 받았다. 저축은 두 배로 늘었다. 양가 부모님 용돈과 아이 구몬 학습지 정도만 지출이 늘었다. 나머지는 똑같다. 외벌이 때에도 돈으로 편리함을 사지 않았고, 맞벌이 때에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절약. 가능하긴 하다. 그런데 피곤하다. 시간이 없다. 설거지와 빨래, 청소, 분리수거, 장보기를 하며 살아야하는건 외벌이 때와 마찬가지다. 낮 동안 출근했으니 이 모든건 퇴근 후 후다닥 해야한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생활에 들어갈 노동은 같지만, 주어진 시간이 다르다. 힘들다.


그렇다면 돈으로 시간과 편리를 살 수 있을까? 있다. 나는 농사짓지 않고 마트에서 고구마도, 쌀도, 버섯도, 오이도 사 먹는다. 나는 나무를 깎아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어주지 못 하고, 덴마크에서 만든 레고 사준다. 지금도 돈으로 시간과 편리를 사고 있다. 이건 '더'와 '덜'의 문제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편리를 살 수 있을가? 더 있다. 산다면 끝도 없다. 손가락만 까딱하며 살 수 있다. 외식하면 되고, 반찬가게 가면 된다. 의류 건조기를 들이고, 로봇 청소기를 사며, 식기 세척기의 힘을 빌릴 수 있다.  


그런데 사기 싫다. 이게 뭔 똥고집이냐. 맞벌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나는 왜 촌뜨기처럼 새 문물에 손대기를 두려워하는걸까.


왜냐하면 번 돈만큼 다시 쓰면 맞벌이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뉴스를 엄지 손가락으로 쭉쭉 내리면서 핸드폰을 보던 시간보다, 식재료를 다듬어 밥상을 차리는 일이 더 행복하다. 적당히 더럽고, 대충 차려먹는 집안일이라면 즐길거리가 된다.

우리집은 작다. 이 작은 집에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를 들일 공간이 없다. 최신 가전제품을 들이기 위해서는 더 큰 집으로 이사가야 한다. 그러면 빚을 져야 한다. 맞벌이가 힘들어서 최신 가전제품들을 들이고, 외식도 하고, 반찬가게도 갔는데, 집 대출 갚느라 맞벌이를 계속 할 수는 없다. 악순환이다. 힘들어서 돈쓰고, 돈갚느라 또 힘들고.


결정적으로 기계와 서비스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외벌이일 때에는 살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했고, 그래서 피곤했다. 외벌이라고 결코 낮시간이 마냥 한가하진 않았다. 게다가 적응 하니까 짧은 시간에 후닥닥 집안일 하는 것도 손에 익는다. 부지런하게 살면 된다.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힘들어서 돈쓰고, 돈갚느라 힘든' 역설을 미리 피하고 싶기에, 조금 피곤하더라도 번 돈 보다 적게 쓰는 맞벌이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 


환경에 빚지는 마음도 덜하다. 사지 않는 일, 내 힘으로 해내는 일이 화석 연료를 최소화 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쉽고 원칙적이란 것을 안다. 가장 친환경적인 행동은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 일이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누구나 아프리카의 왕처럼 살 수 있다고 말 했지만, 누구나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살기 위해서는 결국 기계와 전기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플러그를 뽑고 산다. 왕처럼 살지 않으면 어떤가. 절약 전, 왕처럼 여가 시간을 누릴 때 내가 하던 일이라곤 고작 핸드폰을 들고 뉴스를 질리도록 보거나, 웹툰을 보거나, 그마저도 다 봐서 웹툰 미리보기까지 모두 다 보고 나서 '허무하다.'하며 잠드는 일일 뿐이었다. 의미없는 뉴스를 엄지 손가락으로 쭉쭉 내리면서, 눈이 상할까봐 블루 스크린 앱을 설치하면서 핸드폰을 볼 때보다, 차라리 수세미를 뜨고, 빗자루질을 하고, 내일 먹을 반찬을 미리 다듬는 일이나 책을 읽는게 더 행복했다.


(+ 저는 남편은 퇴근 시간이 같고, 집안일도 균형있게 나눠 합니다. 기계적인 5:5 집안일을 지향합니다. 아이들도 4살, 6살. 많이 컸죠. 그렇기에 외식, 반찬가게,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없어도 일상이 굴러가긴 합니다. 만약 저 혼자 가사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거나, 퇴근 시간이 늦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하지만 글에는 If가 없습니다. 상상력이라도 감히 혼자 두 아이 돌보면서 가전제품 힘을 안 빌린다는 이야기는 못 합니다.)


나는 내 속도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돈을 적게 쓰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검소하게, 또 검소하게.


나는 내 속도대로 살고 싶다. 맞벌이 할만 할 때 맞벌이를 하고, 외벌이를 해야 할 때 외벌이를 할려면, 최소한 대출에 눌려 살고 싶지 않다. 과잉 노동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건 살림 감각이다. 돈을 적게 쓰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돈 많이 쓰는 버릇을 들이고 싶지 않다. 검소하게, 또 검소하게. 


절약의 쓸모는 정말 다양하지만, 2020 맞벌이 절약가가 생각하는 '절약의 쓸모'는 결국 '자유로움'이다. 돈으로 뭘 사겠는가. 나를 더 그럴듯하게 치장해주는 여러 물건과 사회적 지위의 상징들? 됐다. 별로다. 돈 때문에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을 자립감, 일 할 수 없을 때 일 하지 않을 주인의식, 100세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마실 차 값과 읽을 책 값, 그리고 100세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안정감있는 세상.


맞벌이지만 절약하며 산다. 돈을 얼마나 어떻게 쓰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산다. 아껴야'만' 하는게 아니라, 아낄까 말까를 고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끼자'라고 결론 내린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고민 속에 산다. 어떤 삶을 기획할지 자유롭게 선택한다. 이러니 식비 15000원이 할만하면, 구태여 20000원으로 올리지 않는다. 뭐하러. 할만한데. 오늘 저녁도 집밥이다.


(+

외벌이일 때에도, 맞벌이일 때에도

하루 식비 15000원과 하루 생활비(의류, 의료, 여가, 교통, 유류, 생활잡화) 15000원으로 삽니다.

부부 의류비 예산도 6개월에 각 10만원입니다.

적당한 소비의 즐거움도 누립니다.

참고 견디는 절약을 해서 끝끝내 부자가 되었다는 해피 엔딩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매일매일을 간결하고 충만하게 지내는게 목적입니다.

부자가 된다고 행복한게 아니라,

더 많이 소비한다고 행복한게 아님을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적당한 소비의 즐거움은 남편과 저, 각각 한 달 20만원 용돈 내에서 해결합니다.

이 돈으로 각자 이발도 하고, 화장품도 사고,

아이들 책도 거하게 사주고,

가끔 서로에게 커피도 사주고,

집에 꽃 한 송이 들여놓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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