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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Jun 26. 2020

중고 거래의 기적? 그거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겁니다

직장 동료들의 집 중 우리 집이 제일 낡고 가장 좁다.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싼 집이다. 지어진 지 20년 되었고, 전용면적 59㎡이며, 전세보증금 6482만 원이다. 그마저도 전세보증금은 2022년까지 동결됐으니 2년 더 가장 싼 집일 예정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집이 대궐(?)인 줄 알았는데, 오랜 육아휴직 후 복직해보니 아니었다. 2015년 육아휴직 시작에서 2019년이 되는 사이, 내가 사는 강원도 동해 지역에도 다투듯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올 봄 복직하니 동료들 대부분이 새로 지어 깨끗하고 구조가 잘 빠진 데다 전용면적까지 더 큰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음이 동했다. 우리 네 식구도 좋은 집에서 좀 살아볼까? 그 길로 집 주변 아파트들을 알아봤다. 새 것의 아름다움. 과연 다르다. 새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물도 안 새는지 우리 아파트처럼 '이 자리 주차금지' 팻말도 없고, 주차장도 꽤 커서 이중주차로 출근길에 고생 안 해도 될 그런 곳이었다.


가격을 살폈다. 전용면적과 실거래가 그리고 부동산 신문에 게재된 호가까지. 지금 사는 집의 전세 보증금과 얼마간 모아둔 돈을 셈했다. 돈이 됐다. 작고 낡은 집은 유지비도 적었다. 그래서 4년 간의 육아휴직 중에도 차곡차곡 저축할 수 있었다. 작고 싸서 착한 집이었다. 돈이 들기는커녕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줬으니 말이다.


부푼 꿈을 안고, 드디어 집 구경을 하는 날. 나는 거실에서부터 숨이 막혔다. 너무 넓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실을 둘러봤다. 저 공간이 필요한가? 사람 살면서 저 넓은 거실을 채울 만큼 잡다한 물건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황당할 따름이었다.


좋은 집에 겁이 났다. 돈을 들여 이사가면 넓게 써서 좋기야 하겠지만, 거금을 쓰려니 망설여졌다. 지금 집에 아예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낡은 집은 그냥 낡은 집이다. 낡은 집이 대단할 리는 없다. 그렇다고 4년을 모은 돈과 휑한 공간의 교환이라니. 고민됐다.


큰 돈 들여 이사하면, 저축액이 제로에 가깝게 수렴한다. 사람은 여윳돈으로 너그러워지는 법. 적어도 집을 한 채 사고도 넉넉한 여윳돈이 남을 때 이사를 하고 싶다. 달팽이처럼 가진 거라고는 집밖에 없는 미래에는 찜닭 한 마리 시켜먹을 때에도 슬퍼지겠지. 뿌리없는 나무처럼 휘청일 것 같다.


이사를 망설인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사는 집이 4인 가족 살기에 작지 않기 때문이다. 돈 들이면 넓은 집과 불편한 마음을 얻을 것이요, 돈 안 쓰면 불편하진 않은 집에 경제적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집 구경 당일 결심했다. 차라리 돈 안 쓰고 불편하지 않은 집을 택하자고.


작아도 넓은 이유, 중고 거래


▲  중고 거래를 시작했다. 집이 넓어졌다. 물건을 더 살 일도 없다. 경제적 풍요가 뒤따라왔다.

지금 사는 집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중고 거래' 덕분이다. 집 만족도와 중고 거래라니? 이게 웬 생뚱맞은 조합인가. 하지만 분명 관련이 있다. 지역 맘카페와 중고거래 앱과 친해지면 작은 집도 넓어지고, 때로는 저축도 더 많이 해서 유복해진다. 가진 물건을 헐값이나 공짜로 남을 주자. 그러면 작은 집도 넓어진다.


중고거래의 시작은 2016년. 큰 아이가 한창 배밀이를 할 때 즈음이었다. 육아휴직을 했는데 우울했다. 일터로 갈 수 없어 자주 기분이 가라앉았던 것이다. 잠깐 자고 자주 우는 첫 아이를 돌보는 건 내가 경험한 일 중에 최고난이도 고강도 업무였으나, '업(業)'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엄마 노릇은 기꺼이 하지만, 성취감과 보람은 다른 데서 찾고 싶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나는 돈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주눅든 마음이 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당장 어린 아이 데리고 할 만한 일을 찾지 못 했다. 육아휴직 신분이니 겸업도 안 되고, 아르바이트도 안 된다. 돈 모을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남았다. 바로 살림이었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고, 나는 안에서 돈을 지키기로 했다.


작정하고 절약, 저축을 결심했다. 책부터 폈다. 살림과 간소한 삶 그리고 재테크 책들을 꼬리 물기로 읽어갔다. 수십 권의 책 속에 돈이 되는 만고불변 살림 진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적은 물건으로 살기'다. 요즘말로 '미니멀라이프', 우아하고 아름다운 삶의 양식 말이다.


▲ 거실 가운데 볼풀장이 있었다. 중고로 팔아 집이 넓어졌고, 더이상 볼풀장 따위의 덩치 큰 장난감을 들이지 않았다. 대신 더 큰 공원에서 나뭇잎을 세며 놀았다. 돈이 모이고 아이

가진 물건을 덜어내고 비워냈다. 거실 한 가운데 꽉차게 자리를 차지했던 볼풀부터 정리하고, 애 엄마가 된 후 살이 쪄 못 입게 된 10만원대 원피스 두 벌을 식빵 한 봉지와 바꿨다. 이케아 장식장은 5천원, 이케아 책장은 드림했다. 화장대를 단 돈 만 원에 팔고, 청담동 디자이너가 지어준 아이 돌잔치 한복은 2천원에 내놓았다.


중고거래 혹은 나눔의 기준은 명확하다. 첫째, 안 쓰는 물건. 둘째, 언젠가 쓸 것 같은 기분만 드는 물건. 그렇게 4년을 중고거래 중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워내고 또 비워내도 여전히 정리 중이다. 며칠 전에는 아이 기저귀를 어린이집에 기증하고, 기저귀함과 면마스크를 내놓았다. 다 읽은 책을 비롯하여 뜯지 않은 아령까지 친구들에게 다 퍼줬다.


집이 넓어졌다. 여백의 극치다. 이제 우리집 안방에는 침대 매트리스와 피아노 한 대만 남았다. 거실겸 주방에는 책장 하나와 레인지대 하나, 식탁과 냉장고, 에어컨만 있다. 서재에는 책장과 책상, 그리고 아이들 장난감 조금. 옷방에는 행거와 아이 서랍장 뿐이다.


소비도 줄었다. 새 물건과 새 가구도 잘 사지 않게 됐다. 어지간한 물건은 예쁜 쓰레기 정도로 보일 뿐이다. 필요와 불필요를 보는 안목이 선명해졌다. 우리 부부의 의류 예산은 각각 6개월에 10만 원이다. 나와 남편은 그간 키가 크고 몸집이 커져 옷을 산 게 아니었다. 유행이 바뀌고 쇼핑이 재밌어서 옷을 샀을 뿐이다. 과소비를 그만뒀다. 7년 된 패딩과 10년 된 자켓의 품질은 변함 없다.


중고 거래의 기적. 집이 넓어지고, 돈은 덜 쓴다. 돈 안 쓰면 돈이 모인다. 중고거래로 푼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득은 소비 욕구가 줄었다. 덕분에 중고거래 시작 1년 만에, 우리는 2017년 새로 태어난 둘째 아이와 함께 49㎡ 신혼집에서 59㎡으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지방이라 집값이 쌌다. 1000만 원 더 들었다.


집만 넓어졌을 뿐만 아니다. 시간을 샀다. 돈을 더 쓸 일 없으니 돈을 더 벌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갚아야 할 급한 대출이 없어 어린 두 아이를 돌보고 싶어 육아 휴직을 1년 더 연장했다. 중고거래로 얻은 깨달음 덕에 소비를 줄이고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목표는 중고 거래 최소화


▲  둘째 아이 옷은 거의 물려입힌다. 사진 속 옷도 물려받은 것이다. 물건을 오래 써야 환경이 산다. 중고 옷과 싱그러운 자연은 언제봐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초보 살림꾼은 경제적 유능감을 갖고 싶어 중고 거래를 시작했다. 그 후, 넓어진 집, 소비 욕구의 하강, 그리고 저축액 증가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얻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자본의 승리라고 외치는 이면에 대량 폐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잉 소비와 기후 위기의 상관 관계를 알게 됐다.


중고 거래가 늘어난 것은 경제적 불황을 의미하는 걸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중고 거래의 활성화야말로 쉬운 소비와 쉬운 포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쉽게 차를 사서 중고로 팔고 신형 차를 사면 중고 차가 늘어난다. 유행 따라 옷을 사면 유행 지난 중고 옷들도 많아진다.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이라 남에게 팔 만큼 품질도 좋다. 중고차도, 아이들 장난감도, 옷도, 가방도 모두 그렇다.


사실 나도 여전히 중고 거래를 끊지 못 한다. 그만큼 불필요한 물건을 계속 사들인 탓이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대개 제 쓰임을 못 하고 팔려나갔다. 부끄럽지만 나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에 일조했고, 그만큼 생산-유통-폐기 과정에서 탄소 배출물은 내 몫이었다. 기후 위기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매해 피부로 느끼는 기후 위기와 쓰레기 대란에서 배운다.


그럼에도 중고 거래는 권하고 싶다. 다만 물건이 떠난 빈 공간에 또다시 불필요한 물건을 채우지 않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당신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후는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이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중고 거래가 최소화 되길 바란다. 한 번 들인 물건은 쓰임을 다하기 전까지 남의 손에 팔려나갈 일이 없어야 한다.


"흰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가방이 에코백이 아니고, 이미 우리가 가진 가방을 오래도록 쓰는 것이야말로 에코백임을"이라고 담담히 고백하던 박현선 작가(<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의 저자)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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