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Jul 03. 2020

임대 아파트와 감정 노동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검소하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동을 해야 한다. 바로 육체 노동과 감정 노동이다. 돈을 덜 쓴다는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내 몸을 써서 움직이는 일이다.


가사 서비스 대신 직접 집을 청소하고, 외식이나 반찬가게 대신 집밥을 차리는 일이다. 방문 학습지 선생님을 모시지 않고, 부모가 아이에게 글자 하나 하나, 셈 하나 하나를 가르쳐줘야 하는 일이다. 자동차 값과 세금 그리고 유지비를 들여 자동차를 운전하기보다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 일이다. 


품을 들일수록 돈을 아낄 수 있다. 결론은 명확하다. 절약하고 싶다면 육체의 수고로움을 아쉬워해서는 안 된다. 절약은 '육체 노동'이다.


그런데 검소함과 감정노동은 무슨 상관인가. 이건 조금 생뚱맞게 들릴 수 있다. 집으로 설명하면 쉽다. 사례를 찾으러 멀리 갈 것도 없다. 며칠 전에도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발단은 세종시 솔빛초등학교의 학군 조정이었다. 솔빛초 주변으로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이 아파트에 입주할 어린이들을 솔빛초로 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존 솔빛초 학군인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반발했다.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써붙인 '학군 조정의 문제점'이 가관이다.


"임대아파트(LH)가 포함된 학군으로 분류되어 아파트 이미지 저하가 우려됨."


누가 봐도 '뻔뻔한' 말. A아파트 주민들은 곧바로 입주자대표회의의 공식 의견에 반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바로 사과하고, 대표자는 직을 내려 놓았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이 있든 없든 값싼 임대아파트에 살면 주눅이 든다. 이게 바로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노동이다. 


검소하게 사는 데 필요한 감정노동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나는 집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며 집을 둘러싼 사람들 시선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때 마침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불안>을 만났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통해 임대아파트와 감정노동의 상관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알랭 드 보통은 단칼에 말한다. '불편은 모욕을 동반하지만 않으면 오랜 기간이라도 불평 없이 견딜 수 있다'라고.


그의 말대로 불안의 정체는 '모욕'이었다. 돈이 많든 적든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모욕감을 걱정한다. 돈을 덜 쓰면 불편하다. 이때 모욕적인 기분이 들지 않으면 오랜 기간 검소하게 살 수 있다. 불편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불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욕을 느끼는 순간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나도 그랬다.


나와 남편은 자주 이사갈 집에 대해 얘기한다. 주변 동료, 친구들이 모두 최근 분양한 신축 아파트들로 이사갔기 때문이다. 마음이 동했다. 새 집, 정말 좋을까? 좋다면 우리도 이사를 가보자! 싶었던 것. 


하지만 성에 차는 집이 없다. A는 새 집이고 지나치게 넓지 않으나 채광이 안 좋다. B는 채광이 좋은데 4인 가족 살기에 너무 넓고 풍경이 안 좋다. C는 아이들이 뛰어놀 넓은 광장이 있고 채광도 좋고 풍경도 아름답지만, 직장과 아이들 유치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D는 지어진 지 15년 즈음 된 헌 집이고 풍경도 좋고, 광장도 있고, 채광도 좋지만, 주차공간이 좁아 이중주차로 몸살이다.


지금 사는 우리 집은 채광도 좋고, 풍경도 좋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산책로와 가깝고, 직장과 아이들 유치원도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다. 전용면적 59㎡인데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은 우리 식구가 살기에 공간도 적당하다. 심지어 값도 싸다. 전세 보증금 6482만 원으로 3년간 살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욕'이다. 나는 이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종종 모욕을 느낀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데다가 옆집 이웃들도 다정한 우리 집은 그저 '임대 아파트' 딱지 하나가 붙으니 대우가 다르다.


사람들에게 내가 사는 곳을 말하면 짧은 침묵이 돈다. 침묵 이후에는 민망함을 만회하기 위해 고맙게도(?) 화제를 바꾸거나, '돈 열심히 벌어 이사가면 된다'는 난데 없는 격려를 쏟아낸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좋아한다. 낡고 좁긴 하지만 이 가격에 이 풍경을 누리며 산다. 아파트 바로 뒤에는 작은 도심이 있어, 집 앞에만 카페가 6개, 편의점은 3개다. 가성비 갑!

처음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당황스럽고 난처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주거비가 적은 덕분에 저축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점점 살림이 안정됐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편안하다. 이 임대아파트는 굉장히 실속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임대아파트 꼬리표만으로 나를 측은해 하거나 때로는 낮잡아 보기도 했다.


우리는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온갖 '가격대비' 따지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집에 있어서만큼은 잣대가 다르다. 비쌀수록 좋다. 비싼 집에 살수록 우쭐할 자격을 얻는다. 우리가 사는 집을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무례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뭘까?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 <불안> 중, 알랭 드 보통 지음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과 차, 옷을 살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일면 공정하고 평등해 보인다. 가난해도 노력하면 사업에 성공할 수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도 있다. 계속 가난하다면 그것은 게으름과 부덕의 상징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싼 집을 살 수 없으니 공정하고 평등한 능력주의 앞에, 임대아파트는 도덕성과 성실함의 결함으로 보일 뿐이다.


모욕에 대해 감정노동 하지 않는 방법


불편과 모욕을 혼동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모욕도 불편이다. 귀찮고 성가신 감정노동이다. 다행히 이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총 다섯 가지 사례를 든다. 이 중 예술과 보헤미아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좋은 예술 작품을 봐야 한다. 위대한 화가와 소설가들은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를 골라낸 후, 우리가 진정으로 아름답게 여겨야 할 가치들을 작품으로 승화한다.


그 중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보자.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은 욕망과 허영, 사치 때문에 성실한 남편을 버리고 불륜을 저지른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고, 가산도 모두 탕진해버린다. 집을 장식하고 새 커튼을 사며 망토와 여행 가방 등을 마련하며 빚을 진다. 그 빚을 갚지 못 해, 다른 빚을 끌어와 갚는다.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채무를 모면하다가 결국 파산한다.


보바리 부인이나 우리나 다름 없다. 보바리 부인을 읽고 나면, 도무지 그녀를 욕할 수 없다. 너무 흔한 장면이다! 보바리 부인은 이자가 잔뜩 불어난 대출을 갚지 못 해 비극으로 끝났으나, 우리는 대출 끼고 산 34평 아파트에서 비극을 읽지 못 한다.


겉보기에 번듯한 신축 아파트에 대출 잔뜩 끼고 산 34평 아파트와 빚 없이 버는 돈을 족족 저축하며 살 수 있는 26평 임대 아파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나는 실속을 택했다. 26평 임대 아파트에 살며 돈을 모아 저축하고 투자한다. <마담 보바리> 같은 예술 작품을 읽고 나면 임대 아파트의 모욕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능력주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가난한 부모 아래서 성실히 공부한 아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는다는 얘기는 이제 '예외'의 사례다. 소수의 일이다. 


이젠 상위 20퍼센트의 중상류층이 계층 이동 사다리를 악의 없이 천천히 걷어차버리고 있다. 일 하지 않고도 돈을 버는 불로소득을 통해 더 쉽게 부를 세습하고, 가진 부를 이용하여 자녀를 더더욱 똑똑하게 양육한다. 자본 소득은 노동 소득보다 수 배 빠르게 부를 증식한다. 



<마담 보바리>, 귀스타프 플로베르 지음

우리는 <마담 보바리> 같은 예술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타인의 삶'을 통해 불안을 달랠 수 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람들은 보헤미안들이다. 보헤미안들은 삶다운 삶을 방해하는 과잉 노동, 허례허식, 허영과 사치를 거두어 낸다. 그리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집중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서 해 가린다고 비키라고 했던 2500년 전 철학자 디오게네스에서부터 200년 전 메사추세츠 콩코드 지방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던 하버드 대학 출신 똑똑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리고 여전히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보헤미안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헨리 D. 소로우)의 목표는 외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부르주아지에게 물질적으로는 빈약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었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 <불안> 중,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리는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 절약을 한다고 해서 모욕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그런 식의 감정 노동은 그만 두자. 남 눈치 보기는 이제 끝! 우리는 예술로부터, 보헤미안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다. 


절약을 자랑하고 노래하자. 예쁜 맛집 사진 한 번 찍으면, 집밥의 수수함 예찬을 잊지 말자. 더 많은 이들이 소박한 삶의 예쁨을 알아차리고 좋아해준다면, '불편은 불편할 뿐. 모욕을 동반하지 않게' 될 테니까.


물론 이때의 불편은 '이 자리 주차 금지'라는 팻말이 놓인 주차 공간을 피해 주차를 하는 정도의 불편이다. 혹은 체리색 몰딩에 익숙해지는 정도의 불편이기도 하다. 불편이라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편리함이 넘치는 곳.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고 거래의 기적? 그거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