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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Sep 23. 2020

이 부부가 사는 법-우아하게 절약하기

[MBC 영동방송 보라보라 출연 후기]

금요일은 다섯 시간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편의점에 갔습니다. 당류 빵빵한 인스턴트 커피를 사기 위해서죠.


저는 중요한 일을 앞둘 때면 꼭 인스턴트 커피를 챙깁니다. 달달한 걸로요. 수능을 볼 때도, 임용을 치를 때도, 그리고 오늘처럼 오랜만에 등교하는 아이들과 다섯 시간 동안 수업을 해야하는 날도요. 카페인 덕에 심장이 두근거려 왠지 의욕이 느껴지고, 슈가 하이(sugar high)가 와서 없던 힘도 솟아나기 때문이에요. 더 잘 하고 싶을 때, 더 잘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듭니다. 인스턴트 커피로 말이죠.


물건을 고를 때면 기후 위기가 신경쓰여요. 그래서 알루미늄 캔에 담긴 캔커피를 샀어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스타벅스 라떼를 좋아하지만 차마 살 수 없었습니다. 플라스틱 때문이죠. 플라스틱은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는데다가, 재활용 하기도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커피를 사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덜 소비해야, 하나가 덜 생산될테니까요.


고맙게도 캔커피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보다 값도 쌉니다. 1500원을 주고 스타벅스 더블샷 라떼를 샀어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스타벅스 카페라떼는 세일도 잘 안 해서 하나에 2300원이거든요.


교실에 앉아 서둘러 들이키고 양치하고(커피 마신 입으로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면 입냄새에 쓰러집니다.) 수업 시작 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지치질 않고 다섯 개의 반 아이들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개인 지도 했네요. 캔에 담긴 커피도 꽤 쓸만하군요!


쉽게 버린 후 사지 않고 고쳐쓰기, 고장나지 않았다면 구식의 보온병이라도 물을 담아 다니기. 조금 더 좋아하는 맛, 조금 더 몸이 편한 일이 포기합니다.

스타벅스 라떼의 맛이 욕망이라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싶은게 제가 선택한 목표입니다. 욕망과 목표 사이를 자주 왔다갔다 합니다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제가 조금 더 좋아하는 맛, 조금 더 몸이 편한 일을 포기합니다. 욕망과 목표 사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가치로운 일을 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매일 아침 보온병에 물을 넣어 챙겨갑니다. 생리기간 4~5일 동안은 면생리대를 빨아씁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면생리대를 써요. 가방 주머니에는 손수건 서너장을 넣어 다닙니다. 손 닦는 일회용 펄프 대신 손수건에 닦기도 하고, 큰 아이가 춥다고 하면 목에도 둘러주고, 때로는 책상에 흘린 커피나 물을 닦기도 합니다. 요즘은 돼지고기와 소고기 반찬을 줄이려 노력합니다. 채식이 기후위기에 맞서는 데에 도움이 된다기에 그렇습니다. 아참, 텀블러는 지갑이나 휴대폰만큼이나 잘 챙깁니다.


그렇게 플라스틱 생수병과 일회용 생리대, 폴리 소재 물티슈와 종이컵, 플라스틱 컵 사용을 줄였습니다. 돈도 많이 아꼈습니다. 일회용품은 필요할 때마다 새로 사야하지만, 다회용품은 갖고 있던 걸 쓰면 그만입니다. 일년 동안 생리대를 안 샀더니 돈이 아주 많이 굳었습니다. 텀블러를 들고다니면서 카페에서 음료 할인을 300원에서 500원씩 해주었으니, 이것도 돈을 아꼈네요.


무엇보다 '안 삼'으로써 많이많이 아꼈습니다. 생수병도 안 사는데 다른 잡동사니라고 사겠습니까. 옷도, 신발도, 가방도, 사는게 이득일 것 같은 왠지 싼 잡화들도, 안 삽니다. 이게 지난 달 생활비(잡화비+의료비+의류비+여가비+교통비+유류비)가 고작 353,020원 든 이유입니다.


인생 무슨 재미로 사냐고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충분히 즐겁습니다.


단순히 '나'를 위한 절약이었다면 파리바게트에 포장된 샌드위치를 사먹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자. 이것이 내가 아는 규칙이다.

내가 선택한 목표로 다시 돌아가자. 결코 차와 커피를 마셔서는 안 된다. 고기도 먹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계급이나 세대가 먹는 음식은 그들이 속한 지역과 하는 일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 <소로의 일기: 전성기 편>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더 맛있는 것, 더 편리한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고민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데 부족한 것이 뭐가 그리 많을까요. 맛있는 캔커피와 깨끗한 물과 보드라운 면생리대, 정갈한 손수건을 두고 '부족'하다고 느끼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충분합니다. 부족할리 없으니 더 나음을 욕망하기보다 의미를 추구하고 싶어요. 의미를 추구하는 삶은 다른 색깔의 욕망이기도 하구요.


충분함을 깨닫고, 더 가지려 애쓰지 않기. 더 가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당위'에 있음을 알기.


절약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하루 예산 가계부', 혹은 '선저축 후지출' 보다 더 효과적인 절약 비법입니다.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온갖 기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돈을 더 절약할 수 있는 알맞은 마음을 만드는게 더 중요합니다. 그게 우아하게 절약하는 비법입니다.


절약이 개인적 차원의 이익에 머무른다면 오래하기 힘듭니다. 쉽게 포기할 이유가 많습니다. '너무 돈, 돈 거리며 살지 말아야지.'하며 오늘의 과소비를 합리화하게 되요.


하지만 절약이 도덕과 당위(should do)의 문제가 되면 돈을 쓸 때 약간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내 돈 주고 일회용 생리대와 플라스틱 컵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는 데에도 기분이 나빠져요. 물티슈를 살 때에는 아주 많이, 아주 오래 머뭇거리게 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소비를 줄입니다. 배달음식 한 번에 쏟아지는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생각하면 귀찮아도 차라리 밥에 계란, 김치, 김을 먹는거죠. 와, 그러면 돈도 아끼네요.


MBC 영동방송, '보라보라'에 출연했던 방송분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만, 어떤 프로그램들을 존경하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때마다 한 편의 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님, 메이크업 아티스트, 카메라 감독님에서 연출팀까지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가는 지를 보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아름다운 프로그램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과 자제력이 있다면, 아마 저도 집에 TV를 들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의미보다 재미부터 추구할 스스로를 엄청 잘 알기에... 아예 TV 없이 살고 있지만요.


스튜디오에서 녹화할 때에는 절약의 당위성, 즉 기후 위기와 소비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독서'를 절약 비법으로 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 잘렸네요... 아마도 제한된 45분 시간 동안에 모든 녹화분을 담을 수 없었을 거에요. 그러니 일단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유용한 절약 이야기들이 먼저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영상에 담기지 않은 내용을 오늘 글로 남겼어요.


'당장 급하고 유용한' 절약 에피소드들은 영상에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계좌와 곳간을 채울만한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절약이 참 좋아요. 절약하는 개인은 풍요로워지고, 절약받는 지구에 쓰레기를 덜 배출할테니까요. 오늘 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서로서로 검소하게 살면 체면치레와 겉보기 등급, 우열을 가리는 못된 습성을 줄이기도 합니다. 소비한 물건의 결과값으로 은근한 등급을 나누는 문화를 완충하는 데에도 절약은 훌륭한 해법이에요.


여러모로 절약 이거 흥해야 합니다! 절약 만세!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035&v=6k5TjfZon_g&feature=emb_logo

+) 다시 보아도 진행해주신 설디&펀디님은 진정 프로십니다. 촬영 내내 즐거웠는데 다시 보아도 이 분들의 유쾌한 진행 덕분에 신나네요.

+) 프로그램에 추천해주신 하윤&현우님, 이끌어주신 작가님, 그리고 촬영 내내 애써주신 감독님, 호박에 줄 그어주신 메이크업 아티스트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시 기억해도 훈훈한 분위기와 환대가 인상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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