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 달 가계부]
야망
내 야망은 뭘까 생각해도 퍼뜩 떠오르지 않길래, 나는 야망을 만들어내는 중이란걸 알았다. 야망이 없는 사람이 야망이 뭘지 생각하니, 야망의 목록을 써내려가는 일조차 어려웠던거다.
몇 년 전 즈음에는 잘 팔리는 책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출간 계약을 하고 인세를 계산해보니 초판 3000부를 다 팔아도 선인세를 제외하고 내가 쥘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 인세가 박해서 '잘 팔리는' 책보다는 '가치로운' 책을 쓰고 싶어졌다. 초판 1쇄만을 찍고 잊혀지더라도 그저 내가 쓸 수 있었던 말, 내가 쓰고 싶었던 말을 기록했다면 그걸로 좋다.
내가 쓸 수 있는 말,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쓰며 살기. 바라는 삶이지만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야망이라 말하기에 작은 규모니, 야망이라 보기 어렵다. 내 소망에 야망은 없고 과정이 있다. 야망이 없으니 지금 이 순간도 소망은 이뤘다. 이미 그 '쓸 수 있는 말', '쓰고 싶은 말'을 쓰고 있으니까. 바로 이 글. 훌륭한 결과 값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매일에 충실하며 개인이 만족하면 그걸로 되었다.
성실한 소신
과정을 내실있게 살고 싶은 마음. 매일을 성실한 소신으로 살아가는 마음에 정이 간다.
그래서 절약이 쉽다. 부자가 되고 싶은 '야망'을 달려가는 중이라면 절약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된다. 야망을 이루려면 늘 조금은 이겨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데 먹을 밥은 직접 짓고, 가진 물건을 오래 귀하게 쓰는 과정이 좋다. 그래서 지금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어쩌면 절약은 '사치 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미래에 먹을 한우 꽃등심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오늘 먹은 돼지 등갈비와 된장찌개가 맛있으면 그걸로 된다. 돈 많이 모으려는 야망은 아닌데도 역설적으로 돈이 모아진다. 돈 덜 썼으니까 저축을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1인 분의 경제적 자립하기, 불필요한 물건으로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이런 소신을 지키며 매일을 사는 삶은 작고 가볍지만 의미있고 기쁜 일이다. 이런 간소한 일상의 지속은 큰 돈 들지 않는다. 큰 돈 들이고 싶은 삶을 살고 싶다면 아마도 '잘 팔리는' 책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을 것이다. 책이 잘 팔려야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집밥 먹는 습관이 쓰고 싶은 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해주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잘 안 팔리는 책의 작가지만 야채 카레에 고등어 조림만 먹어도 너무 좋으니까.
야망 없는 소박한 일상이 야망이 없어도 별일 없는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얼마만큼 돈이 덜 들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아이 둘 키우는 4인 가족의 한 달 가계부를 공개한다. 우리 집은 매달 17일에 월급을 받는다. 8월 17일~9월 16일까지의 가계부이며, 예산은 하루 식비 15000원, 하루 생활비(의류+의료+잡화+여가+교통+유류) 15000원이다.
8월은 31일까지 있었다. 15000원 X 31일. 정확한 한 달 식비 예산은 465000원, 한 달 생활비도 465000원이었다. 식비+생활비 예산은 총 93만원이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이번 달도 살림 잘 했다.
식비는 528385원, 생활비는 353020원이 들어 총 881405원이 들었다.
큰 돈 안 들이고 흡족했던 한 달의 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자유롭고, 앞으로의 나를 자유케하리란걸 안다. 절약이 좋은 사람은 야망도 없다. 그래도 된다. 적은 돈으로 사는 힘은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가장 큰 무기다.
블로그에 기록해왔던 2020년, 한 달 가계부들입니다.
7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2066569641
6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2034979089
5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2006564835
4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1966654918
3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1914510437
2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1861308177
1월 가계부
https://dahyun0421.blog.me/221814860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