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3월이 다시 떠오른다. 일상이 살얼음판이었다. 카페든, 마트든, 심지어 엘레베이터까지 걸음을 내딛는 곳 모두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코로나19에 걸릴지도 모르고,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5개월이 지난 8월, 또 시작이다. 질기고 끝도 없다. 다시 불안했던 봄이 반복되는 중이다.
다만, 올 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봄에도 해냈듯이 올 가을에도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으쌰!) 그 요령은 '자연'이다. 자연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이든 터지고 나서든 한결 같다. 물론 야외라고 다 안전하지는 않다. 나는 바닷가에 살면서도 요즘 바닷가가 제일 무섭고, 계곡을 등지고 살면서도 계곡 또한 무섭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자연이라도 꺼림직하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강변 산책로, 산기슭을 찾는다. 사람 많은 낮시간을 피해 밤에라도 아이들과 산책 중이다.
코로나19가 불안하고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1일 1자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리처드 루브의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를 읽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루브는 '자연결핍장애'를 소개한다.
자연결핍장애란, 우리가 한줌만한 자연 속에서 살아갈 때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이다. 우울해지고, 심장이 약해지며, 비만해 질 수 있고, 학업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 쉽게 좌절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연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학업능력과 집중력이 높아지며, 또래 압력을 잘 견디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수해진다.
40쪽. 자연결핍장애는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감각의 둔화, 주의집중력 결핍,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발병률 증가 등을 포함한다. ... 자연결핍의 반대는 '풍부한 자연 환경'이다. 자연결핍장애가 가져올 결과를 예측해 본다면, 그 반대로 어린이들이 풍부한 자연 환경 속에서 자랄 때 신체적, 인지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을 받을지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코로나19로부터는 집이 가장 안전할 수 있지만, 우울증과 비만, 심장병, 학업능력부진, 회복탄력성 저하로부터는 자연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전처럼 아무 때나 어디든지 불쑥 나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조심조심 나가본다.
한 때, 아이들을 기를만한 한적한 시골집을 찾아 헤맨적이 있었다. 내 어린 시절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동차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롭길 바랐기 때문이다.
라떼는~ 자동차 무서운 줄 모르고 컸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주택들은 다 '맹지'였기 때문이다. 맹지란, 도로가 이어지지 않아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부동산 가치로만 보면 볼품 없지만, 나는 차 없는 동네에서 메뚜기나 나비, 실잠자리도 잡고, 나팔꽃 새싹을 마당에 옮겨 심어 보면서 컸다.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았다. 30년 전, 동해는 도로보다 작은 골목이 흔했고, 그건 도심이어도 마찬가지었다. 우리 집 근처에 큰 마트도 있었고, 정형외과, 소아과, 치과도 걸어서 다녔다. 학교도 꽤 컸다. 6학년 때 4반까지 있었던 것 같다. 동네에 어울릴 또래가 많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도로 없는 시골마을 찾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차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면, 집이 너무 낡아서 개보수가 힘들었고, 주변에 마트, 병원이 없었다. 동네에 어린 아이들도 거의 없었다. 이제 마트, 병원, 학교가 있는 곳의 주택은 대문 밖이 모두 아스팔트 길이다. 차들이 쌩쌩 다닌다. 대문 앞에서 고무줄하고, 사방치기 할 수가 없다.
261쪽. "산책로나 자전거도로가 부족하다는 점과 현 시대에 비만과 심장병이 팽배하다는 사실 사이에 연관성이 있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건강이 위험하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이불 속에만 살 수는 없다. "차 조심해! 엄마 손 꼭 잡아! 뛰면 안 돼!" 잔소리 3종 세트를 달고서라도 일단 넓은 자연으로 나간다. 거기서 걷고 뛰는 즐거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이틀 전, 화요일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애들을 부지런히 챙겨 7시 30분에 산책을 나섰다. 그 날의 첫 산책이었다. 낮시간이 너무 더웠고 코로나도 무서워서 밤산책을 나선거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저녁 노을이 지는 어스름한 시간이었는데, 산책로에 도착하니 벌써 어두워졌다.
귀뚜라미 소리, 서늘한 강바람, 그리고 갈대 냄새, 고개를 묻고 잠을 자다가 인기척에 깨버린 오리들. 선명하게 뜬 반달과 바람에 다같이 한들거리는 강아지풀. 낮 시간의 스트레스와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의 어플리케이션, 플라스틱 장난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아이를 안고 업고 남편과 건너던 강 위의 돌다리, 그 순간을 오래 잊지 못 할 것 같다.
돌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 잔디밭으로 갔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놀기도 하고, 'star walk 2' 어플리케이션을 깔아 밝게 뜬 별자리를 보기도 했다. 그 날, 토성, 명왕성, 목성이 나란히 있었는데, 어플리케이션이 없었다면 그냥 밝은 별인 줄 알 뻔 했다.
16세기에 살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 옛날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하고 얼마나 감탄했을까. 최첨단 도구 없이 투박한 망원경으로라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 관찰한다면 업적을 남길 수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목성을 보면서, 나도 꾸준히 읽고 쓰며 '생각하기'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48쪽. 자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유쾌한 경험을 하는 것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날 정도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머리 위를 날아가는 백조 자리와 데네브(*백조 자리의 밝은 별), 서쪽으로 지고 있던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리고 W모양의 카시오페이아까지. 이름을 알고 보면 별자리도 더 반갑다. 별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곤충도 그렇고, 이름을 알면 알수록 자연을 걷는 걸음걸음 즐겁고 유익하다. 별, 꽃, 곤충을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한창 놀고 있는데 연둣빛 LED 로봇 같은게 눈 앞을 날아간다. 반딧불이다!
아이들과 급하게 반딧불이를 뒤쫓았다. 반딧불이는 잔디밭 속으로 앉아, 잔디 사이를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꽁무니에 LED 전구만큼이나 선명하고 밝은 빛을 반짝이니, 땅 속에 숨어도 쉽게 찾았다. 큰 아이는 반딧불이를 잡았다. 콩벌레(쥐며느리)도 볼 때마다 잡아서 둥글게 마는데, 반딧불이도 잡아보고 싶어 했다.
반딧불이는 가만가만 큰 아이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날아다니는 녀석인데 도망치지도 않고 손바닥 위만 요리조리 기어다닌다. 아이는 반딧불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깜깜할 때 켜두고(?) 싶단다. 푸핫. 형설지공은 21세기 꼬마도 생각하는구나 싶다.
"반딧불이 아기가 '아빠!'하고 찾을지도 몰라."
반딧불이에게도 아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니, 조금 더 고집 피우다가 순순히 보내준다.
반딧불이와 잠에서 깬 오리, 백조자리와 반달, 그리고 강바람에 한들거리는 강아지풀들. 어느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환상적인 밤이었다. 동화 같았던 그 밤을 연출해준 것은 모두 자연이었다. 이런 밤을 자주 느낄 수 있다면,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의 리처드 루브의 말처럼, 스트레스도 모두 해소되고, 집으로 돌아가면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기운을 얻을 것이다.
55쪽. "자연 환경이 풍부한 곳에 사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큰 스트레스를 겪은 아동일수록 자연에서 얻는 위안의 효과가 크다."
109쪽. 아이들이 매일 자연을 접하면 주의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을 통해서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효과가 있지만, 나무와 풀이 있는 곳에 있을 때 가장 효과가 컸고, 야외 활동도 효과적이었다. ... 집에서 보이는 경치가 푸를수록 집중을 더 잘하고 충동적 행동을 덜 하며 쉽게 만족감을 느낀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수학능력이 높고 또래 압박을 잘 감당하며 위험하거나 건강에 해롭거나 문제가 되는 행동을 잘 피할 수 있다. 또한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연은 전염병의 위협 속에서도 안전하게 우리 가족을 품어주고 있다. 자연은 기업에게 돈이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좋은 장소로 잘 홍보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자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게 돈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한 사람이 부쩍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되어간다.
여기, 강원도 작은 바닷가 마을은 비록 용 안 나는 개천이라지만, 자연이 풍부한 이 개천에서 건강한 뱀으로 자라나는게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건강한 뱀에게는 건강한 용이 될 힘이 잠재될 것이다. 자연이니까 가능할 것이다.
39쪽. "자연에서 놀면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분야(*숲, 들판, 계곡, 빈터 같은 자연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에 대한 연구)를 연구하라고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도 없죠. 아이들이 자연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한다면 석유도 필요하지 않고, 영화나 텔레비전도 보지 않을 테고, 아무에게도 돈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