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나눈다는 것

by 경희

누구나 우울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마음속에 약간의 우울을 품고 있겠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우울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웬만한 일을 가지고는 나를 우울함의 끝으로 이끌기 쉽지 않다. ​그러다 어쩌다 우울이 찾아오는 날이 오면, 최대한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되도록 내 안에서 끝내려고 혼자 애쓰는 것 같다. ​한 후배가 조심스럽게 내게 건넸던 질문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선배는 왜 자기 얘기를 잘 안해요? 고민 같은 거 없어요?”


​남들이 봤을 때는 속마음을 잘 내비추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는 정말 고민이 없었지만, 아마 고민이 있었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내게 속깊은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해준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는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묻고싶다. 당신은 우울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것을 들어주는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아마도 자신에게 눈이 멀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민거리 따위를 말했을 때 내게 있던 우울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만큼 상대방도 내 우울을 가져가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우울을 나눈다는 것은 이면이 존재한다. ​고민거리도, 걱정거리도 아무것도 없는 이에게 내 우울의 한 귀퉁이를 조금 떼어 나누어주는 것이다.​ 매번 밥 먹듯이 고민상담을 해주던 지난날들이 스쳐간다. 이제껏 여러 사람들의 우울을 넘칠만큼 과분하게 받아왔다. 그리고 이는 정작 내 우울을 쉽게 꺼내기 어려워진 이유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니 당신도 우울의 한 귀퉁이를 나누어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길 바란다. 내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우울인지 아닌지. 만약 아니라고 판단이 된다면 그때는 마음껏 털어놔도 좋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나치게 우울을 토한다면, 결국 어떤 이도 나중에는 자신의 우울을 꽁꽁 숨겨두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안에 있는 우울을 굳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꽤 오래이다.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다른 이가 내 우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일 뿐이다.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우울만으로도 벅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미 누군가는 그 반복적인 이야기에 지쳐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가볍게 이야기한 우울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무겁게 다가갈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당신의 우울을 가져가는 상대방은 아무런 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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