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이 아닌 ‘바깥’을 살리는 일
부끄러움
이 서평의 처음을 어떻게 운을 떼야할지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비인간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이유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치 저자의 일기장처럼 적혀져 있는 치열한 순간 속에서의 고민들이 오롯이 느껴졌다.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을 제대로 들여다 보았다면 분명 한 장 한 장을 마음 편히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먹먹했고, 답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정서는 바로 '부끄러움' 이었다. 털이 몸에 붙는게 싫어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고 섣불리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던 것도, 추운 날씨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보고 가엾다고 생각한 것도. 감히 나 따위가 뭐라고 그 아이들을 내 멋대로 판단한건지 죄스러웠다. 고기가 맛있다며 좋아하고, 그저 더 따뜻해지기 위해 오리털 패딩을 입고, 악명 높은 동물실험을 통해 나왔을지도 모를 화장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고 난 후, 나는 이 책을 손에서 쉽사리 뗄 수 없었다. 이 부끄러움과 초라함이 다행히도 나를 끊임없이 반성하게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자기 자신을 버리는 행위
“엄마, 나 강아지 키울래.”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렸을 적에 한 번쯤은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런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없어서. 그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자신도, 마지막에 원치 않게 생으로 이별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과감히 포기했다.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 속에서는 어디서 온건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동물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본인이 책임을 지지 못함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죄없는 동물을 버리는 일들이 허다하게 발생하는 것일까. 저자를 밤낮으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뿐이다. 그러니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제발 아예 시작조차 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반려동물을 버렸다면, 자기 자신도 함께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하나의 소품에 불과한
‘미디어의 동물 착취에 대하여’ 챕터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영상제작과에 다니면서 영상을 만들고, 또 친구들이 만든 영상을 보면서 그 안에 종종 출연하던 동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뮤직비디오 속 이별을 앞둔 연인 사이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라든지, 자유롭게 헤엄치는 해파리를 보고 자유를 느끼고 싶은 주인공을 대변한다던지, 주로 동물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하고 그것에 맞게 소비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동물들이 나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문제로 이어졌다. 촬영이 끝난 후 그 동물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매우 참담했다. 혼자 생을 마감한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금붕어를 어떻게 했냐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고 히죽거리며 말하는 동기의 표정을 보고 차마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 아이들이 영화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닌채 소비되어야 할까, 왜 그 명분이 다하면 꼼짝없이 사라져야만 할까.
이는 과연 살인과 무엇이 다른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당신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
내 ‘안’이 아닌 ‘바깥’을 살리는 일
나는 동물에게 관심이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동물권에 무지했고,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저 내 ‘안’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느라 아픔이 있는 ‘바깥’을 살리는 일에는 너무나 무감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저자가 동물들이 자신을 살려주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이 책이 나를 살려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하나도 높거나 낮게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동물과 동등한 시선으로 눈을 맞출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간절히 꿈꿀 뿐이다.
무제
석수, 까망이, 후디, 토라, 리버, 플라, 달리, 갈라, 마크, 로스코, 모리, 아리. 책 속에서 저자의 손길이 닿은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나는 이들이 모두 숨이 붙어있는 하나의 생명이고, 나와 똑같은 존재임을 명확히 안다. 그리고 이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한다. 동물들을 살리는 일의 시작은 이렇게 무제였던, 즉 이름이 없던 동물들에게 하나하나 그에 어울리는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없는 존재들에게 앞으로 하나씩 이름을 붙여줄 출판사 무제의 모든 발걸음을 응원한다. 첫 발걸음은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반드시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 발걸음이 차갑지만은 않기를, 모두의 숨결이 닿아 따뜻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