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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04. 2020

Ep5. 저 멀리 호수 하나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서울에서 내가 애정 하는 장소가 있다. 호숫가 주위로 살짝 우거진 나무들과 그 경치를 여유로이 바라보고 휴식할 수 있는 나무의자들이 잘 놓여있다. 생각보다 꽤나 커다란 호수 덕에 한 바퀴를 돌려면 음악을 몇 곡이나 들어야 하는지 모른다. 음악을 듣다 잠시 이어폰을 빼고 걸어볼 여유도, 놀이동산에서 들리는 비명과 환호소리를 멀리서 바라보며 약간의 마음이 동화될 수 있는 곳 



석촌호수



초등학생 때 이런 석촌호수를 처음 접하곤, 엄마 아빠한테 여기에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땐 부동산이니 집값이니 알 턱이 없었으니깐.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며 석촌호수를 맘먹듯 드나들 수 있는 날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난 석촌호수를 사랑한다. 저녁시간이 되면 말끔히 차려입은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지긋한 주름살을 가진 부부가 나와 산책 겸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나라 유명한 건축설계사 유현준 대표가 강연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건물의 배치, 설계 하나하나가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추억을 만들고, 서로 조화롭게 만든다.'



석촌호수는 그런 면에서 아주 완벽한 공간이었다, 나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쏘아 다니다 시내 쪽에 적당히 큼직한 호수 하나를 발견했다. 태국답게 무에타이 팬츠를 입고 미트를 치는 사람들, 조용히 산책하며 사색을 즐기거나, 친구들끼리 나와 강변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관광도시 그것도 허니문 섬에서 이렇게 일상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다. 



사무이 changweng호숫가



그 뒤론 호수를 지나칠 때마다 잠시 멈춰 바라보았다. 호수 뒤로 넘어가는 해질녘과 그 앞으로 굵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빠르게 질주하는 사람들, 노래를 틀어놓고 비보잉을 연습하는 힙한 친구들까지. 그렇게 조금씩 Chaweng호수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호숫가 앞에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주려는 듯.





평소에 자주 조깅을 하진 않지만, 괜히 매일 호수에 갈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어 운동을 시작했다. 해질녘이 되면 동남아의 뜨거운 햇살은 물러나고 은근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는 노을을 뒤로하고 한 컷.



미리 준비해온 나이키 반바지에 나이키 양말, 나이키 헤어밴드까지 조금은 익살스럽지만 모두 맞춰 입고 나간다. 사실 운동복이 하나밖에 없는 탓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곤 마무리로 아디다스 팔 토시를 껴준다. 이건 언벌란스가 아니라 여행 겸 선물로 받았기에 약간의 예의랄까? 





해가지기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호숫가로 향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 딱 5분이면 입구에 도착한다. 남들처럼, 아니 마치 여기에 사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내려간다. 괜히 코사무이 일상에 기억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남겨보려는 의도이다. 





신발 끈을 꽉 조여매고, 몸을 조금씩 풀기 시작한다. 한때 꽤나 잘 달렸던 몸이지만, 이젠 잘 달리는 거엔 관심이 없다. 그저 호숫가에 많고 많은 한 명이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거니까. 



딱히 특별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무던히 누군가의 눈에 코사무이의 일상적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달릴 뿐이다.


공을 높이차 위에 달려있는 망을 맞추면 이기는 놀이.


외국까지 와서 운동한다는 건 꽤나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자기 관리의 측면을 제외하고, 왜냐면 딱히 한국에서도 꾸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 아닐까.


한 달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이것이 은근한 생활 활력을 준다. 자칫 무료할 수도, 지루할 수 있는 여행이기에.


 저 멀리 외딴섬의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허니문 코사무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 해변이 아니라 호수라는 것. 


함께한다는 것. 이제는 여행에서 아름다운 것, 예쁜 랜드마크를 보는 기쁨보단 현지인들의 일상에 녹아들어 가는 모습에서 이뤄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낀다. 물론 남들처럼 같은 공간에서 사진 찍고 비슷한 걸 먹고 사진도 찍지만 충족되지 않은 무언가가 항상 존재해왔고, 그것을 일상의 모습이 가득 채워주었다. 




엄마, 이젠 호숫가 앞에 살 수 있게 됐어



비록 한 달이지만 말이야. 아직도 호숫가 앞으로 이사할 만큼은 못되었지만, 함께 석촌호수를 거닐며 저 멀리 호숫가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걸로도 괜찮아. 


호수를 바라보면 걱정과 근심이 사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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