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스코틀랜드 203cm 장신의 소유자 마크.
마크는 항상 내 블로그를 번역해 읽는 걸 재미로 여긴다. 물론 누군가가 나와 함께한 일상을 적는다면 괜히 궁금해할 거 같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오늘은 느긋이 2층 테라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너 블로그로 돈 벌어?”, 매일 일처럼 글을 쓰는 내게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아니, 아직 난 새싹이라서 그렇진 못해. 대신 유명해지면 그럴 수 있겠지?” 깊이 있게 돈에 대해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아직은 남기고 생각해보고 글을 적는 것 자체가 좋을 뿐이었다.
“내가 본 한국인들은 너처럼 블로그 안 쓰던데 맞지? '여기가 어디냐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직진하면 여기에요' 그러잖아, 항상 USP를 생각해야 해 뭐든지”, 마크가 얘기했다.
잠깐만, USP? 대학교 전공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USP가 뭐야?”
그러자, 마크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Unique Selling Point”
마치, 지도 교수님에게 블로그를 조언받는 기분이었다. 매일 내 블로그를 웃어넘기며, 내 일기장을 훔쳐보는 냥 쳐다보는 줄만 알았던 마크에게 약간은 놀랄 뿐이었다. “너 블로그의 USP가 뭐라고 생각해?” 드디어, 날카로운 창이 아직 온전하지 못한 방패에 날아들었다.
“어…음… 그러니까”, 다행스럽게도 전공 발표 시간에 이것저것 질문하는 지도 교수님과는 다르게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나도 8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매일 이렇게 글을 남겼어, 나중에 돌아가서 책을 낼 거야. 미국에서 머리에 총 겨눠진 이야기, 거미한테 팔을 물려 독이 퍼진 이야기, 뭐 엄청 많지, 그러니까 너도 잘 적어서 나중에 꼭 출판해봐. 좋은 경험일 거야”라며, 자신이 적은 일기를 보여주었다. 거의 A4용지 400페이지 분량이 넘도록 글을 적고 있었다. 딱딱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조언이었다.
만약 누군가를 존중하고 있다면 이런 거겠지. 적당한 선을 지켜가며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충분히 놀랄만했다. 매일 실없이 웃고, 말도 안 되는 장난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마크였지만, 오늘만큼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곤 굉장히 쿨하게 풀장으로 떠나버렸다.
(USP 외에도 나에게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와 이슈,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생각해볼 게 많아진 그런 대화였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나 보다. 가끔은 센티해지고 싶은 날? 풀장에서도 그리 가벼운 대화가 아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UK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은 이유, 왜 외국에서 일하고 싶은지 등등 누가 묻지 않았지만 앤서니, 마크, 그리고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다. 아마도 어둑어둑한 저녁시간이 주는 아련함과 풀장을 사이로 켜진 조명이 주는 느긋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맥주 한 잔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거다.
딱히 짧은 영어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시기적절한 표정과 리액션, 그리고 가끔 무거워진 이야기를 깨뜨려줄 장난기 섞인 행동만으로도 충분했다.
"혀니, 맥주 10명 어떻게 마시는 줄 알아?"
"한 병 마시고 오줌 싸면 다시 리셋이야!"
어두운 밤공기에 눌려 우리들의 기운이 떨어질 때면,
풀장에 꽉 찬 웃음소리로 다시 저 멀리 하늘로 밤공기를 올려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