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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04. 2020

Ep7. 나 이 집에서 나갈게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지구의 중력을 혼자 받은 듯 아침부터 매가리 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딱히 잠을 못 잔 것도 아니었고 여행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기분을 풀어보고자, 라면을 끓였지만 이마저도 맛이 없었다. 



태국에서만든 한국식 OK라면. 하필 또 한강이 되어버렸다.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갈 뿐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잠을 많이 잤지만 왠지 모르게 이불 속에서 가만히 있고 싶은 날,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뒹구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잠이 오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은 날.



그렇게 이불 속에 누워서 눈을 감고 숨을 쉬었는데 문득, 일요일 아침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어릴 적 나에게 일요일이란, 회사원 아버지와 맘껏 놀 수 있는 날이었다. 아침 대청소부터 시작하여 난 마트에 가는 걸 줄곧 즐기곤 했다. 왜냐면 나에게 뭐라도 조그마한 콩고물이 떨어지는 날. 그게 과자든, 장난감이든. 난 그런 여유로움을 즐기곤 했다. 



그날이 그리워 눈물이 날 거 같거나 그런 건 아니었으며, 추억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도 모르는 새에 스르륵 단잠에 빠졌다.







“지이이이이잉, 지이이잉”  계속된 핸드폰 알람이 나의 단잠을 깨워버렸다.



“나 내일이나 모레쯤에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제스퍼의 이별 통보 문자였다.



코로나 때문에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벨기에 엠버서더에서 싸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더라. 사실 매번 짜증 내고 화내고 귀찮게 했어도, 막상 간다니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떠난다는 말에 우린 정리할게 마음 말 곤 더 있었다. 



이성주의자 마크는 곧바로, 전기값 정산을 시작했다. 걱정하지 말란 말과 함께. 오랜 여행 경험에서부터 나오는 노하우일까 한치 흐트러짐 없이 계산하고 공지했다. 총 1770밧, 5일 동안 쓴 전기세이다. 한화로 치면 대략 7만 원 정도. 각자 500밧씩 내기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었지만, 더운 여름 그것도 4명이서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줄일 수는 없었다. 내가 에어컨을 조금 아낀다고 해서 남들이 아끼는 건 아니니까. 그게 단체생활이고 어려움이란 걸 몸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자 제스퍼가 말했다. “뭐? 500밧? 너무 많아. 내 예산초과야 나 그렇게 못내”


기가 막히게 이런 날엔 또 비가 온다.


집주인은 4명이서 한 달 전기세가 평균 6000밧 =24만원정도 나올 거라고 공지해 주셨고 그에 맞게 예산을 짰던 제스퍼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마크가 이야기했다. “너 에어컨 켜고 밖에 나가고 그랬잖아, 그래서 많이 나온 거야.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줄여나가야만 해.”


제스퍼 머릿속엔 다른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예산초과라는 것 말고는. “처음엔 6000바트라고 이야기했잖아, 난 세탁기 돌리지도 않았어. 너넨 따로따로 돌리잖아”



원래도 평소 초등학생 같았던 제스퍼였지만, 이젠 장난감을 사 달라 하는 어린애기에 불과했다. 하나하나 다 따지기 시작했다. "난 사용하지 않았고, 너넨 뭐 했고 뭐 했고"



“나 이 집에서 나갈게, 집세 돌려줘” 


급기야, 빌라에서 제스퍼가 나간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정말, 파국일까? 나머지 집세를 돌려달라는 제스퍼의 말에, 마크는 단호하게 말해버렸다. “우리가 모두 동의하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집세를 돌려줄 거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의 집세를 돌려줄 수 없어”



그 이후 마크는 약간의 욕설을 섞어가며 말했고, 굉장히 화가 난 듯했다. 설자리가 없었던 제스퍼는 내 옆을 서성이며 자신의 불만거리를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는 마냥. 



어느 정도 제스퍼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본인이 생각한 예산이 있을 거고, 그리고 단체생활에서 분명 트러블이 생길 수 있는 예민한 돈 문제니깐. 그런데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가 제스퍼에 대한 신뢰를 바닥나게 만들었다. 자신조차 전기를 아끼지 않는데 전기값이 많이 나왔다고 찡찡대는 아이를 누가 과연 달래줄까.



논리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찡찡거림에 3명 모두 입을 닫아버렸다. 저녁이 돼서야 들어온 제스퍼는 괜히 집 안을 서성거렸다. 한 공간이 둘로 나눠져 있는 듯했다. 




한바탕 소동 후 다시 햇빛을 되찾았다. 우리 빌라에도 다시 빛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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