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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언 Feb 10. 2020

효율적으로 일하는 디자이너가
말하는 캐릭터 이야기

스타트업 캐릭터의 스타트업스러운 탄생비화


유산슬 - 합정역 5번 출구


데뷔 한 달만에 실검을 장악하고 연말 시상식에서 상까지 거머쥔 트로트계의 대형 신인이 있습니다.

요즘 트로트라는 장르가 아무리 핫하다지만 가요계를 통틀어 이런 기록을 세운 신인은 없었을 겁니다.

가요 순위 상위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진입장벽을 낮춘 이 노래,

놀라운 점은 그뿐이 아닙니다. 히트 친 노래가 단 10분 만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유산슬

중독성 있는 이 노래가 10분 만에 탄생한 곡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짧은 시간으로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연신 감탄했습니다.


사실 저는 옛날부터 투입된 시간의 양과 결과물의 퀄리티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굳.이.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은 아닙니다.

평생을 그래 왔죠. 어릴 때부터 그래 왔는데 지금도 그렇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요?

결론적으로, 항상 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은 꽤 좋았습니다.


이게 진짜 '효율' 아닐까요?


제가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홀리 제작자로서 전하는 홀리의 탄생 비화입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의 캐릭터 제작기라고 하면 한 회사의 공식 캐릭터로서의 목적과 활용 방안에 부합하는 모티브 선정 단계부터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회사의 철학, 캐릭터의 설정 및 배경이 되어줄 세계관 정립 등 다각도의 심층적인 고민과 프로페셔널한 디자인 작업 과정을 생각하실 텐데요.

오늘은 그런 이야기는 다 생략하고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데일리펀딩의 캐릭터는 사실 꽤 오래 시간 전부터 디자인팀에서 욕심을 내었던 부분입니다. 다만 여러 가지 급한 일정들로 우선순위가 다소 미루어졌는데, 어느 날 동현(팀장)님께서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며 우리 회사 모토에 맞추어 디자인팀 각자 캐릭터 스케치 시안과 스토리를 구상해보자는 것이 홀리의 시작이었죠.


그 날 이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담곤 했는데 캐릭터에 대한 본격적인 아이디어는 정말로 평범한 일상 중에 떠올랐습니다.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순간이었죠, 번뜩. 심지어 그 TV프로가 기억도 납니다. '맛있는 녀석들'을 시청 중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집에 굴러다니던 구형 휴대폰을 급히 집어 들어 떠오른 아이디어를 점점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캐릭터의 영혼이 탄생하는 시점이죠.



목표는 단 하나. 귀여워야 한다.


천리길도 뻔한 한 걸음부터

동현님이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우리 회사 로고에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굉장히 뻔하디 뻔한 시도부터 해봤죠.

데일리펀딩 로고 심벌에서 소통을 상징하는 말풍선 모양의 ‘D’ 위에 무작정 눈과 입을 그려 넣었습니다.

악. 징그러웠습니다.

첫 번째 시도, 실패. 기업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일단은 호감형이어야 하니까요.

물에 관련된 회사가 아닌 이상, 도저히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파란 얼굴의 괴생명체


얼굴이 파란색이면 뭘 해도 귀여울 수 없다

파란 얼굴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이목구비가 잘 보여야 캐릭터 시늉이라도 하겠다 싶어 동그랗고 하얀 얼굴을 그려 넣었죠.

여전히 어딘가 허전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대로 꼬불꼬불 말린 금발 머리카락과 수줍은 분홍빛 뺨을 추가했습니다.

아, 이제 됐다 싶었습니다.

두 번째 시도만에 얼굴 완성.

왼쪽부터 캐릭터 얼굴의 단계별 발전 모습


딱딱하고 보수적인 금융업과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필요해

개인적으로 토끼 모티브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미 금융업계 내 동물 캐릭터는 레드오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데일리펀딩의 비전인 ‘안정적이고 투명한 핀테크 금융업’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이끌고 가되, 밝고 선한 이미지를 강조하여 투자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저는 사랑스럽고 순수한 아기를 떠올렸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기’는 광고 흥행 요소 3B(Beauty, Baby, Beast) 법칙 중 하나이니까요.

이렇게 캐릭터의 정체성과 목표가 정립되었습니다.

광고에 Beauty(미인), Baby(아기), Beast(동물)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등장할 경우, 대중들의 관심과 호감도가 상승하여 광고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법칙.





Simple is the BEST!

아기와 데일리펀딩, 금융을 잇는 연결고리가 필요했습니다.

아기를 제외한 두 요소에서 단번에 연상되는 공통 이미지는 ‘돈’이었죠.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늘에서 돈이 비처럼 내리는 행성이었습니다.

‘돈→돈이 비처럼 내림→돈이 비처럼 내리는 행성→외계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우주인→불시착하여 데일리펀딩을 만남’으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행성 이름은 데일리펀딩의 ‘D’를 따서 ‘델타’로 정했습니다. 

뭐 이런 모습이었겠죠?


그리고 지구인은 비에 젖지 않기 위해 우비를 입지만,

델타족은 비처럼 내리는 돈을 적립하기 위해 우비를 입는다는 설정을 만들었죠. 

데일리펀딩의 고객 모두가 데일리펀딩을 통해 돈을 적립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캐릭터 홀리는 파란 우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우주 어딘가에 있을 비 대신 돈이 내리는 특별한 행성 ‘델타’에 살던 아기 우주인 ‘홀리’는 어느 날 시공간의 틈에 휩쓸려 갑작스레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리고 데일리펀딩에서 강아지 ‘델리’와 아기 다람쥐 ‘토리’를 만나게 되고 그들 앞에 즐거운 모험으로 가득 찬 나날이 펼쳐진다.


우주인의 불시착

클리셰 같은 스토리지만 마침 연결고리가 필요했던 세 가지 요소들이 갖추어지자 퍼즐 맞추듯 착착 끼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캐릭터 설정과 세계관 구축.

이 모든 과정은 쉴 틈 없는 마인드맵 확장을 통해 단숨에 이루어졌습니다.

각 이미지의 샘플 스케치 버전(좌)과 디지털화 버전(우)


시간과 퀄리티는 비례하지 않는다


한 회사를 대표하는 공식 캐릭터라고 해서 무조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또 그런 수식어가 곧 '프로페셔널'이나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정비례의 공식이 반드시 성립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오롯이 긴 시간을 작업에만 몰두하여 창작하는 사람과 영감이 번뜩 떠오를 때 집중하여 창작하는 사람과는 작업 스타일의 차이도 있을 테고요.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감이 떠오르는 그 직전까지 홀리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제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런 일상이 모여 영감이 떠오른 그 순간부터 초안을 만들기까지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하여 최대한의 능률을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나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고 물으신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과 퀄리티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온전하게 집중해야 한다.


이상 스타트업 캐릭터의 스타트업스러운 탄생 비화였습니다.






글 / 디자인팀 홀리 제작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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