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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Dec 28. 2016

about MOVIE_TAXI DRIVER

소시민과 영웅, 그 사이의 간극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 감독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가를 깨닫게 된다.


그의 통찰력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어떠한 호황과 성장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정착하지 못해 불안한 개별적 존재를 담담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면에 숨겨진 공동체의 부조리와 불균형을 비판적으로 꼬집는다.


비틀린 남성성을 대표하는 트래비스

트래비스는 전후세대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남아 택시 드라이버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에게 '평범함'은 또 하나의 적응해야 할 과제처럼 다가온다. 모두가 합의한 듯한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공동체로 대변되는 뉴욕의 공간 속에서 폭력과 악행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남자의 부적응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영웅적 존재로 착각한다. 그래서 매춘, 마약, 폭행, 불법매매 등 이를테면 사회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이 어둡고 칙칙한 뉴욕 뒷거리를 정의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생각과 행위에 공감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철저히 고립된 이 남자가 끝내 도착한 곳은 포주에게 붙잡혀 매춘 생활을 하는 소녀 아이리스이다. 서로를 각자의 고립감과 결핍을 감쇄시켜줄 존재로 인식하며 드디어 인간적인 유대를 형성하게 된다.


조디 포스터의 리즈 시절

사실, 트래비스가 사랑하는 여인은 따로 있다. 아이리스와의 관계에서 출처 모를 부성애와 보호본능에 사로잡혔다면, 벳시와의 관계에서는 마초적인 남성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렵게 약속 잡은 첫 데이트에서 포르노 극장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어이없이 관계의 발전 가능성을 날려 버리게 된다. 벳시와 트래비스의 모습을 보면 당시 미국 사회의 극단에 위치해 있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 운동 본부에서 일을 하며 나름의 교양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질서의식을 갖추고 있는 미모의 여성과 인간관계의 형성 방법을 망각하고 무질서와 비교적 단순 반복의 지극히 평범한 직업을 가진 빈틈 많은 남성. 높아지는 여성의 가치와 반대로 허황된 영웅의식에 가려진 전후세대 남성들을 적절하게 반영했다는 느낌이 든다.


소시민으로서의 한계와 어긋난 시선을 보여주는 캐릭터, 트래비스

후반부 총격전 시퀀스에서 폭발하는 트래비스의 눈빛은 가히 드 니로 최고의 연기라 할만하다. 벳시와의 관계가 어긋난 이후로 또다시 고독에 사로잡힌 트래비스는 그녀가 지지하는 정치권 후보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후 곧바로, 아이리스가 있는 매춘 장소로 가서 포주들과 격렬한 총격전을 벌인다. 이 시퀀스에서 트래비스는 초중반부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마치 군복을 연상하게 하는 야상 점퍼, 극단적으로 부각되는 모히칸 헤어 등은 그가 아직까지 전쟁의 후유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불복종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강렬한 모습은 영화사의 다양한 캐릭터 중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영화를 깊게 몰입해서 보다 보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기 시작한다



트래비스는 한 마디로 어설프고 서투른 당대 남성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존재,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떠한 합법적 권리와 지위를 가지지 못한 채 뉴욕의 밤거리를 관망하는 '택시 드라이버'. 누군가에게 연인으로, 가족으로, 또 심판자로서 다가가려 하지만 외면당하고 홀대받는 한 소시민의 풍자적인 투쟁기.

마지막 장면에서 벳시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후, 백미러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확인하는 모습은 여전히 그가 어떠한 의미가 포함된 존재로서 자신을 조명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과거로부터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트래비스는
그렇게 또 하루의 뉴욕 밤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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