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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Jan 10. 2017

about MOVIE_기적

순진하지만 또 어른스러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다. 기적(한국 제목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역시 마찬가지로 삶이 고달픈 소시민적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잊고 지내던 소중함을 담담 하게 일깨워준다.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상호관계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담백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가 떠올랐다. 장르와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함축적인 메시지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잔혹한 현실을 오롯이 순수한 자기만의 시각으로 인식하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른이랍시고 당연히 옳다고 믿어 왔던 가치들이 리부팅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행복했던 '가족'의 시절

형 코이치는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을 간절히 꿈꾸는, 의젓한 소년이다. 동생 류노스케는 이러한 불균형적 분리 상태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영락없이 순수하고 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그저 매일 벌어지는 모든 소소한 일들이 즐거울 뿐이다. 흥미롭게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류노스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코이치, 둘은 대조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에 속해 있다. 류노스케는 인디음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매 순간 밝고 즐거운 성향을 보여주며 집안일부터 끼니를 챙기는 것까지 독립적으로 해낸다. 반대로 코이치는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듯한 보호 아래 매일 평온한 하루를 보낸다. 식사 장면에서의 교차편집은 이러한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준다. 혼자 밥을 먹는 류노스케와 도란도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코이치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느릿하게 보여주는데, 왠지 모르게 뭉클함이 느껴진다.


류노스케와 아버지 켄지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감독은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비로소 가족의 형태가 완성된다고 역설한다. 물론, 편부모의 아래서 자란 아이들도 멋지고 훌륭한 인격체를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장 아름다운, 본질에 가까운 가족의 형태는 역시 '있어야 할 사람이 있는' 그런 그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각자의 결핍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가족의 재결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모험을 시작한다. 이 모험에 동행하는 친구들도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모험은 전혀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더없이 간절하고 찬란한 순간들이다.


동생 류노스케와 형 코이치

고레에다의 작품들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의 비중이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말인 즉,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사연을 독립적인 씬으로 표현하며 그들의 내면과 감정 상태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생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노부부의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어루만짐은 그 나름의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성장기의 아이와 전성기의 어른, 황혼기의 노인을 '가족'이라는 하나의 소집단으로 묶어 상호 간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꿈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채롭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어른들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과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노인들은 더 이상 꿈속에 젖어 살지 않고 오로지 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한다. 특정한 시기의 대표성을 가지는 주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담백하게 응시한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장면

사실, 이 영화는 별 다른 해석이나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앞서 말했듯이, 잊고 지내고 있던 어떤 것들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이 작품은 행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코이치의 대사는 씁쓸하지만 또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이 어린아이는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도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끝내 바뀌지 않는 불변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담담하게 웃음 짓는 표정에서 앞으로 코이치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일부로 혹은 친구처럼 수용하는 순간 심적으로 조금은 편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된다'. 그 앞에 희망이 가득할 수 있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는 그리도 분투하고 마는 것이다.




난, 가족의 만남을 소원으로 빌지 않았어. 가족보다 이 세계를 선택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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