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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Jan 18. 2017

about MOVIE_스파이 브릿지

업과 국가의 본질

스파이 브릿지는 기승전결의 뚜렷함 없이도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반증하는 작품이다. '스필버그 페르소나'인 톰 행크스의 연기는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보수적 가치와 소시민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협상 변호사 역할은 제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는,

국가의 본질과 업의 올바른 가치 추구에 대해서 역설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그만큼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정한 장르 내에서 정치와 이념, 첩보와 기밀 등 그 나라의 성장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요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공감지수가 반감되기도 한다. 다행히 스펄버그는 불필요한 미사여구와 배경 설정을 제거하고,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그 사건의 가운데 있었던 핵심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다양성'과 '가치판단', 나아가서 국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


소련 측 스파이로 열연한 '마크 라이런스'

개인적으로, 초반부에 등장하는 소련 측 스파이 아벨 (마크 라이런스 분)의 행적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이 마음에 들었다.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해당 인물이 얼마나 섬세하고 결의에 찬 인물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다 목 부분에 굉장히 디테일한 붓 터치를 두세 번 정도 하면서 주름을 표현하는 장면을 통해 감독이 설정한 '캐릭터의 성격'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었다. 러시아인의 토속적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편안하게 구사한 마크 라이런스의 뛰어난 연기력도 돋보였다.

후에, 자신의 스파이 교환 협상을 맡게 된 담당 변호사 짐 (톰 행크스 분)과 철창 속에서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직접적으로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은유적으로 '신념'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는 도중에 조금씩 클로즈업되는 화면을 통해 자신이 속한 국가와 그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더불어 '다른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님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국가와 이념은 다르지만 인간적인 유대를 쌓아가는 두 사람

짐은 아벨의 완강함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인간으로서 존중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첨예한 대립이 극에 달하던 시기 속에서 소련 스파이를 옹호하는 그의 언행은 국민들의 적대감을 배가시키고 만다. 이때, 짐은 자신이 맡은 '변호 임무'의 본질을 상기한다. 사법 체계라는 것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인 국민들이 합의해 도출한 질서 유지의 도구이다. 그 안에서 범죄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은 마땅히 변호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 짐은 '국민'의 범위를 클라이언트와 인간의 범위로 확장시킨다. 자신이 케이스를 맡고 아벨이 피변 호인이 된 이상, 국가의 이념과 냉전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단순히, 변호인과 고객의 관계가 형성되며 (범죄 행위를 강경하게 부정하지는 않지만) 고객이 재판에 회부되는 과정 속에서 겪은 부당한 대우를 질타함과 동시에 판결에 대한 항소를 청구한다. 언제부턴가 직업을 소위 '돈벌이'로만 생각하며 어물쩡 넘겨버리는 우리들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윤리와 의식이라는 것을 스필버그가 요목조목 짚어준다.

주변 사람들의 경계와 홀대 속에서 가족들마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지만, 짐은 포기하지 않는다. 스파이는 아니지만 아벨만큼 완강한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년을 향해가는 톰 행크스의 연기는 시간과 비례하여 농익어 간다.

동독에 수감되어 있는 미국 스파이와 아벨의 교환 협상을 위해 파견된 짐은 또 한 번 '자신의 선택'을 믿고 CIA 정보국에서 의뢰하지도 않은 일을 도맡아 진행한다. 바로 억류된 미국 학생 '프라이어의 자국 송환'이다. CIA는 주요 인물이 아닌 프라이어의 석방에 열을 올리는 짐과 불협화음을 빚게 되지만, 국가 기밀 작전으로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에 확실한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 짐 역시, 자신이 국가의 대표성을 띠고 온 것이 아님을 인지한다. 한낱 뉴욕의 변호사일 뿐이지만, 엄연히 '미국의 국민'이며 '정의'를 위해 올바른 가치 판단을 행한다. 그 가치 판단이라 함은 사실 단순하다. 프라이어 역시 '미국의 국민'이고, 스파이가 아닌 일개 '대학생'일뿐이기에 죄가 없는 그를 구함은 짐의 판단 하에 당연한 것이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짐

사실, 짐의 역할은 미국 정부가 대신했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커녕 대변 기관인 CIA 역시 짐의 뒤에서 정체를 숨긴 채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뿐이다. 반대로 국가 이익과 대의를 위한 개별적 존재의 희생을, 짐은 방관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념도 중요하지만 그 이념 넘어 모두 평등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정의에 대해서 언급한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적 가치 이전에 이성적 판단을 동반한 인간적 대우와 존중. 그것이 선행되는 순간, 양 쪽 모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고 싶어 하며 내 것을 남에게 주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먼저 낮추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내가 속해 있는 그룹과 대척점에 있는 그룹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신뢰를 구축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만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투쟁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올바른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도, 더불어 핍박과 폭력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서는 사람'도.




"STANDING MAN, STANDING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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