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감사'를 배우다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 지 이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날은 날씨가 꽤 흐렸었고, 사막같이 황량한 벌판 위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적막한 길을 걷다가 저만치서 한 사람을 어렴풋이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워서 걸음을 재촉한 다음, 옆에 채 닿기도 전에 급히 인사를 건넸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아주머니는 잠시 길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인자한 미소와 함께 환대해주며 물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왠지 참 따듯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그 날의 목적지까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아주머니는 오스트리아에서 순례를 시작해 대략 이천 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오셨다고 했는데, 그다음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나는 이 분이 정말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직업이 궁금하여 살짝 여쭤보았는데 단어를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아 다시 한번 천천히 본업에 대해 물었고, 이번에는 곧바로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수간호사라고 대답해주셨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해주는 직업.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업으로 그 길을 선택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다 '지금껏 몇 백 킬로미터를 걸었는데 처음 시도해보는 도보 여행이라 그런지 너무 힘들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라며 우리는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다시 한번 두 발로 걸어보기’를 그토록 염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분들에게는 ‘집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 ‘가족과 함께 정원에서 즐기는 달콤한 일광욕’과 같은 과거의 일상들이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 고작 며칠 걸었다며 하소연하고 있는 내 모습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평소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이제 막 누군가와 정이 들기 시작한 때에 필연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옅게 웃으며 대답했는데, 일순간 ‘이제 이 분도 직업적으로만 일을 하시는구나’하고 그렇게나 미숙한 판단을 내려버렸다. 순간 의아해하는 듯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내 반응을 보고서는, 천천히 그러한 행위의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사람과의 추억에 젖어있다 보면 다른 환자에게 오히려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환자들에게 눈과 귀로 담을 수 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들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슬픔과 상실감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만치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어떻게 이천 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삶의 소소한 모든 것들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건강하고 단단한 정신력을 가진다.
이 세상의 소시민들 중에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옆에서 어스름하게 빛나는, 조금은 느리되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슴 떨릴 때 떠나기를. 육체와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그때, 가득 느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