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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17. 2017

감사

그곳에서 '감사'를 배우다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 지 이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깨달음을 주신 아주머니.


그 날은 날씨가 꽤 흐렸었고, 사막같이 황량한 벌판 위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적막한 길을 걷다가 저만치서 한 사람을 어렴풋이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워서 걸음을 재촉한 다음, 옆에 채 닿기도 전에 급히 인사를 건넸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아주머니는 잠시 길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인자한 미소와 함께 환대해주며 물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왠지 참 따듯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그 날의 목적지까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아주머니는 오스트리아에서 순례를 시작해 대략 이천 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오셨다고 했는데, 그다음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나는 이 분이 정말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직업이 궁금하여 살짝 여쭤보았는데 단어를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아 다시 한번 천천히 본업에 대해 물었고, 이번에는 곧바로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수간호사라고 대답해주셨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해주는 직업.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업으로 그 길을 선택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다 '지금껏 몇 백 킬로미터를 걸었는데 처음 시도해보는 도보 여행이라 그런지 너무 힘들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라며 우리는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다시 한번 두 발로 걸어보기’를 그토록 염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분들에게는 ‘집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 ‘가족과 함께 정원에서 즐기는 달콤한 일광욕’과 같은 과거의 일상들이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 고작 며칠 걸었다며 하소연하고 있는 내 모습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평소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이제 막 누군가와 정이 들기 시작한 때에 필연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옅게 웃으며 대답했는데, 일순간 ‘이제 이 분도 직업적으로만 일을 하시는구나’하고 그렇게나 미숙한 판단을 내려버렸다. 순간 의아해하는 듯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내 반응을 보고서는, 천천히 그러한 행위의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사람과의 추억에 젖어있다 보면 다른 환자에게 오히려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환자들에게 눈과 귀로 담을 수 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들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슬픔과 상실감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만치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어떻게 이천 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삶의 소소한 모든 것들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건강하고 단단한 정신력을 가진다.


이 세상의 소시민들 중에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옆에서 어스름하게 빛나는, 조금은 느리되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슴 떨릴 때 떠나기를. 육체와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그때, 가득 느끼기를."

순례를 함께했던 친구들, '탐, 민주, 노이미'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친구들.


늦은 오후의 달콤한 휴식,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느릿한 대화들.


평온하고 가족적인 시골 마을.


내리쬐는 햇빛 사이로 사람들의 여유가 흘러 넘쳤던 몰리나세카.


본격적인 순례의 시작점, 페르돈 언덕.


초록과 파랑, 오래된 집들이 한데 어울려 풍기는 서정적 분위기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했다.

비로소 그들의 '친구'가 되었음을 확인 하는 순간, 그것만큼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도 없다.


Skyvillage.


해바라기는 정말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태양을 숭배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일 수 있을까.


스마트폰과 TV 속에 갇힌 일상을 탈피하여 진정 '자연'의 일부가 되었던 그 때.


도시라 할지라도 번잡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꿀처럼 달콤한 시에스타가 생각나는 때가 되면, 조용히 이 사진을 들춰보곤 한다.


대자연의 앞에서 '인간'을 얼마나 작고도 미약한 존재인지를. 그러니 부디 걱정하지 말기를, 그것은 분명 더 미소한 것일테니.


쌀밥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더니, 기어코 쌀을 구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또 한번,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해 뜰 무렵의 Fromista. 위에서 아래로, 자연의 섭리대로 흐르는 물 처럼 우리도 어디론가 흘러 갈 것이다.


이른 새벽의 출발은 언제나 좋았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나는 진짜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동행.


Best friend '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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