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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20. 2017

크리에이터#2

비슷한 예로, 광고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도 주체적 행위의 중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맡은 업무는 개봉 예정인 영화들의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한 제안서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두세 번 정도 읽고 내가 느낀 정서에 맞춰 자연스럽게 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는데, 무려 두 번에 걸쳐 거절당했다. 이유인 즉, 개봉 시기의 특성과 작품의 오락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영화 마케팅’이라는 업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영화를 파는 사람이었지,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한 여인의 비극적 일대기’ 대신 ‘더위를 한 방에 날려 줄 긴박하고 스펙터클한 최후의 작전’과 같은 문구를 전면에 부각해야 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부터 인턴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어떤 지적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속으로는 일말의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주제의식과는 상관없이, 그토록 자극적인 문구를 추출하듯 뽑아내어 관객들을 모집하는 과정이 ‘거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기만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통 불편했다. 정말로 나는 ‘스펙터클 한 최후의 작전’이 본 영화의 대표성을 띨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상업적 기능을 탑재한 ‘인턴’으로서 업무에 임하다 보니 만족도 측면에서 너무 빨리 임계점에 도달해버린 것만 같았다.


아마 비슷한 또래의 사회 초년생들도 똑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소속될 것인지, 독립할 것인지. 굉장히 간단한 문제 같지만 또 그만큼 무거운 번뇌다. 확실히 나는, 후자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짧게나마 창업을 시도했었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배고픈 크리에이터다. 그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보다는 더 큰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스스로 진실하기에 자신감도 더불어 향상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크리에이터가 될지는 모르겠다. 지향점은 있지만, 샛길은 여러 갈래로 나 있을 테니.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더라도, 뭔가를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하여 사업가가 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창조적인 프로세스를 반드시 추가하고 싶다.


‘라라 랜드’에서 엠마 스톤이 독백처럼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모든 시인, 배우, 광대들이 계속해서 전진하기를.’


나도 누군가를 격려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홍대의 어느 조그만 작업실에 있든, 지방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든 당신의 꿈은 고유하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것만이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해주는 가치라고. 그러니까 위태로울수록 그 순간을 더 즐겨보라고. 적어도 ‘잘 사는’ 사업가가 되기보다, 배고플지언정 ‘위대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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