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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22. 2017

about MOVIE_에너미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혼돈

영화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이 '욕망'이라고 역설한다.



최근, 개봉한 <컨택트> 이후로 드니 빌뇌브의 전작들이 궁금하여 필모그래피를 들춰보다 <에너미>를 발견했다. 이 작품에서 제이크 질렌할은 1인 2역을 소화했는데, 성향이 반대인 두 사람을 동시에 연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역사 교사인 '아담'과 그의 여자친구 '메리'.

영화의 시작부터 뭔가를 함의하고 있는 듯 독특한 미장센이 펼쳐지는 씬이 등장하게 되는데, 나체의 여성이 접시 위에서 기어 나온 거미를 밟는 장면에 이르면 그 상징성과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흐름에 대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순간적으로, 거미가 제이크 질렌할 자신을 의미하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 예감은 곧 확신이 된다. 거미는 몇 번에 걸쳐 등장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중의적 매개체로서 '욕망'도 함께 상징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욕망은 다시 아담과 똑같은 형상을 가진 인격체 '앤서니'로 드러나게 되는데. 후반부에 이르러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이 비극적 결말을 통해서 관객들은 마침내 어떠한 '핵심'을 깨닫게 된다.


'아담'과 똑같은 형체를 가진 배우 '엔서니'.

그 사건과 비슷한 지점에서 앤서니의 아내인 '헬렌'(사라 가돈)이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드러난 핵심을 보다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마지막 순간, 헬렌은 갑자기 거대한 거미로 변하게 되는데 그 비주얼이 전달하는 흉측함 때문에 화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다. 동시에 감독이 이러한 엔딩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앞서 말했듯 거미는 곧 인간의 욕망과 같은 것이므로, 비틀린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위험한 본능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메리와 앤서니의 아내인 '헬렌'.

총체적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바라보자면,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일상적 패턴의 반복 - 비틀린 욕망의 발현 - 혼돈 - 다시 욕망에 굴복'과 같은 공식을 통해 현대인들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 '아담'은 자신의 역사강의 수업에서 '역사는 패턴처럼 반복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과 일맥상통하는 악순환을 직접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표면적으로'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상성'의 무의미를 지적하기도 한다. 학교로 출근을 하고, 집에서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빠르게 교차시켜 보여주며 '존재'라는 것이 일상에 의해 잠식당했을 때, 일종의 '무기력'으로 변모하게 되며 결국에는 건강하지 못한 욕망의 생성을 통해 불안정한 혼돈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딜레마를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무의식 중에 묵인하고 있는 정신질환 같은 것이리라 본다.


'아담'과 '메리'를 지켜보는 '앤서니'의 시선.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으로 짧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전개가 루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몇몇 장면들에서 쉽게 드러나 버리는 상징성과 의도적으로 서스펜스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특유의 사운드, 느릿한 화면 움직임 등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으로 연결되어 영화의 정서적 깊이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디테일한 장면 언급은 되도록 자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정보를 활용하여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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