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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26. 2017

about MOVIE_블레이드 러너

'복제'인간과 '진짜'인간

먼저, 본 영화의 최초 개봉 시기가 1982년임을 유념하고 감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0년이 넘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영상미술적 요소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영화 속 배경인 2019년에 근접한 현재, 공중에 떠다니는 이동수단이나 마주하기 싫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기는 하나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거리와 화염을 내뿜는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선 모습들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세련돼 보인다. 그 시절 어떻게 이토록 충격적인 세기말의 분위기를 상상해냈을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 더하여 리들리 스콧은 매 작품마다


'인간에 대한 고찰'을 전반적인 주제로 많이 활용하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더 효율적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인 2019년의 LA.

진중한 주제에 비해 스토리는 생각보다 간결한 편이다. 소명을 다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Off-World)으로의 식민 이주를 준비 중인 인간이 '넥서스'라는 리플리컨트, 즉 '복제인간'을 창조하여 그들을 식민 정책의 대행자로 활용하게 되는데 이후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지구로 잠입한 잉여 세력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거의 집행자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경찰 특수조직인데 데카드(해리슨 포드)는 베테랑 러너 중 한 명이다. 주목할 점은 배경을 설명하는 오프닝 멘트인데, 복제인간들의 죽음을 '처형'이 아니라, '제거' 혹은 '해고'로 표현한다는 대목을 보여준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그 한 줄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진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인간의 '노예'일뿐인데, 그렇기에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 중 인간과 복제인간의 대립이 드러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유전 공학자 J.F 세바스찬의 집은 종말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하다.

데카드는 잠입한 일당들을 추격하며 한 명씩 처단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이렐 사의 진화된 복제인간 레이철(숀 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장면은 음울하고 절망적인 배경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상징하듯 삽입되어 있다. 실제로 곧 마주하게 될 인간과 복제인간의 공존을 필연적 갈등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화합과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됨을 대표 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복제인간의 수명은 4년으로 고정되어 있다. 때문에 잠입한 복제인간의 리더 로이(룻거 하우어)와 그의 연인 프리스(데릴 한나)는 자신들을 창조한 타이렐 박사를 찾아가 수명 연장을 요구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분노하여 그를 살해하고 만다. 결국, 그들도 진짜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의 지속을 향한 본능을 함유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격체의 기준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들을 진정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살고 싶은 본능적 욕구는 '실재'에 부합하는 요소이지만, 그들의 육체적 능력과 심지어는 기억까지도 모두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경험'이 결여된, 한 마디로 실제 인간의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겪지 못한 비주체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음은 머지않은 미래에 진실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이기에 결코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을 맡은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과 해리슨 포드.

사실, 제작 시기 상 고전 영화에 속할 정도로 오래된 작품이기 때문에 연출적으로 투박하거나 미흡한 부분이 다소 느껴지긴 했다. 개인적으로는 주제가 드러난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전개를 늦췄다는 점, 엇박 타듯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와 일관성 있게 무게를 잡는 톤, 액션 장면 중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이나 표정과 같은 부분들이 조금은 어색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종말론적 세계관을 기묘한 분위기로 연출하기 위한 몇 가지 소스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리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신시사이저 기계음이 극의 스산함을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로이는 자신에게 쫓기다 난간에 매달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데카드를 구해주게 되는데, 이때

'공포 속에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바로 노예야'

라는 대사를 뱉으며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투쟁을 이해하게끔 만든다. 안타깝게도 곧바로, 로이의 수명은 다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의 대사가 바로 영화의 핵심과도 같은데, 식민지화를 위해 전투에 나섰던 행성에서의 기억들을 읊조리며,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 빗 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군.'이라고 말한다.


80년 당시 '일본'이 초열강이었기에, 영화 속 미래의 LA는 일본의 문화가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인생은 짧디 짧았지만, 나름의 투쟁을 했고 그 순간 속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꼈고 그 모든 것들이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기에 그들 역시 '진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온전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본 영화는 후반부의 그 장면을 위해 연출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고찰과 자의적 해석을 요하는 질문들이 종종 등장하게 된다. 확실히 리들리 스콧 감독은 '철학적 핵심'을 토대로 소위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거장이다. 주저리주저리 대사를 늘어놓는 대신,


적절한 비주얼적 요소와 정제된 단 몇 줄의 대사만을 적용하여
우리가 어떠한 생각에 빠지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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