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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Mar 20. 2017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확실히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설사 있다고 한들 결국에는 스스로 정해진 운명 역시 개척할 수 있다고,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오로지 각자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삼 느끼는 바가 한 가지 있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있고, 하게 될 일은 하게 돼있다는 것.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대통령 배 글짓기 대회’의 지역 예선에서 입상하여 구청장 상을 받게 되는데, 당시에는 다소 의외의 결과였기에 시상식장에서 상을 수여받는 순간에도 쭈뼛쭈뼛 어찌할 줄을 몰라 멍하니 땅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그렇게 표면 위로 드러난 나의 잠재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별 다른 작문 결과물이 없었고 심지어는 짬짬이 시간을 내 하던 독서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괜한 사춘기 감성에 사로잡힌 건지, 진지하게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방황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날려버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는 법적으로도 일정한 권리를 갖게 되었고, 그간의 수동적 태도 혹은 획일적인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인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좋아하는 것,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 것, 이미 경험해본 것. 이 세 가지를 토대로 긴 시간 동안(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음주가무와 유희의 시간들을 포함하여) 고민하던 와중에 ‘글쓰기’가 모든 카테고리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특정한 목표를 세우기 이전에 ‘일단’ 해야겠다고, 그냥 그렇게 정해버렸다.


다양한 주제들을 대상으로 이십 대의 낭만과 상식에서 비롯된 주관적 의견, 그 외 상념들을 모두 쏟아냈다. 패션, 영화, 음악과 여행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이십 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트렌드를 소개하고 나름의 분석을 덧붙였다. 그때부터 나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온갖 아이디어와 어떤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감정적 분노와 이성적 비판까지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개인 블로그 운영과 대학생 리포터 및 에디터 활동을 병행하게 된 이후로는 자연스레 삶의 일부가 되었다. 써내려 가는 그 시간만큼은 나는 누군가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사람이 될 필요도, 잘 보이고 싶어 애써 표면적인 겉치레를 동반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나는 나였다. 단언컨대 이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정도 글쓰기에 미쳐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근 4년 동안 꾸준히 축적시키다 보니 이제는 그 묶음 집들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눈과 의식 속으로 침투하여 공감과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이 미약하게나마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색다른 종류의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어찌 보면 참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화면을 켜 놓고는 하염없이 커서를 바라보다 문득 그 어린 날의 나와 현재의 내가 ‘연결돼있는 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미 그때부터 나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마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스프링처럼 이어져 있는 것 같은. 그 말은 곧,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한 인간의 ‘본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초 단위로 지나간 세월을 미분해본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과거의 장면들이 나의 자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터이지만, 그것들의 저 아래 기저에는 결국 한 뭉텅이로 연결된, 변하지 않는 진실이 깔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란 하나의 큰 뿌리가 되었고, 지금껏 거쳐 온 과거들은 어지럽게 뻗은 무한한 가지가 되었다.


나의 근원은 뿌리 속에 깃들어 있고, 다가올 날에 어떤 풍파가 몰아친다 한들 이 뿌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깊게 박혀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우리네 삶이 정해져 있다고 보는, ‘운명론’의 진짜 의미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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