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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Mar 21. 2017

우리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작가 임경선 씨가 '연인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그 누구도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멀찍이 떨어져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에 대입하는 순간,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분명해짐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이별' 따위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쯤 바라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별의 결정적 원인 제공자가 본인임을 자각하면서도 잔인하게 끝인사를 떠미루곤 한다.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은 이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아.’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며 기어코 헤어지자는 말이 상대방에게서 먼저 나오기를 바란다. 세상 그렇게 가식적일 수가 없다. 정말 나쁜 짓이다.


양 쪽 모두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라면, 나름의 합리적인 이별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균형적이기에 밀어내는 사람과 밀리는 사람, 그들 각자의 고통은 결코 수치화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합리적인 이별’이라는 말도 참 웃긴 것 같다.


관계의 끝자락에서 방법론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유효하리라 확신한다. 솔직해지자. 그 사람의 마지막 기억 속의 내가 적어도 비열한 인간으로 남지 않도록 충분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그 사람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덜 받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순간을 '좋은 추억'으로 저장하고, 그 시간만큼 성숙해진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련의 과정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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