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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Jun 06. 2017

힙합

최근 대중에게 가장 많이 노출된 음악 장르가 있다면 단연코 ‘힙합’ 일 것이다.


정확한 시점이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힙합을 처음 좋아하게 된 때는 중고등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알게 된 아티스트 중에는 ‘드렁큰 타이거’와 ‘에미넴’도 있었다. 조금은 기괴하다고 생각했었다.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에미넴의 <stan>, <without me> 같은 곡들을 듣고 있으면 '이게 정말 음악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니까 하나의 음악을 구성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내가 알고 있던 기성 장르들과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일종의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항상 힙합이 가장 순수한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순수하다’는 표현에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어떤 곡에서는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돈과 명예, 여성에 관한 본능적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확실히 기성세대가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없잖아 존재하는 것 같다. 가끔 몇몇 특정 아티스트들의 곡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다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순수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들이 탄생하는 과정이 삶의 근본적인 속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소위 리릭 시스트로 인정받는 래퍼들은 자전적인 삶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작사 작업을 하고, 직접 비트 메이킹을 하고 전체 프로듀싱을 진행하기도 한다. 온전히 주체적으로 모든 창작 과정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예술이란 아티스트의 삶과 사상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서 힙합은 예술의 목적성에 가장 확실하게 부합하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미국 도심의 흑인 빈민가 ‘게토’에서 태동한 힙합은 성장기에 접어든 미국의 주류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흑인들의 저항의식을 담은 음악이었다. 계급과 인종적 차별이 계속되던 시기에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창구는 ‘마이크’와 ‘농구’ 뿐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힙합신을 대표하던 아티스트들의 가사를 보면, 게토에서의 암울했던 과거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마약 거래를 하고, 갱단의 위협에 빠지고,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시기를 지나 마침내 마이크를 잡고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 토해내 듯 뱉어낸 말들이 ‘힙합 음악’의 시초인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는, 아티스트의 자수성가와 꿈을 주제로 하는 곡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사회 비판적이거나 재즈, 소울, 밴드 등 타 장르 간 크로스 오버 형태의 작업물도 많이 창작되었다.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다소 장르의 본질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몇몇 국내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순수하게 음악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수많은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 ‘도끼’는 힙합과 삶의 동치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골수팬들은 그가 어릴 적 컨테이너 생활을 할 정도로 뼈저리게 가난하고 절망적인 소년이었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좌절하지 않았다. 딱히 연고도, 친구도 없는 한국에서 혼혈이었던 한 소년은 꾸준히 곡 작업에 매진했고, 랩을 뱉어 냈고,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노력은 곧 실력이 되었고 래퍼들은 조금씩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레이블을 설립했고 대표가 되었다. 소규모 독립 레이블이었지만,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끈기 있게 선보였다. 그의 진정성, 자수성가의 과정에 공감하는, 또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그는 불행했던 소년에서 존경받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고작 이십 대의 중반을 넘긴 때였다.


내가 힙합 아티스트들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에게서 자꾸만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젊은이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꿈이란 어느 순간 품는 것만으로도 사치스럽고 부질없는 욕망이 되었고, 간신히 마음을 부여잡고 현실을 받아들여 취업을 하려고 해도, 그놈의 취업이 또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고달픈 영혼들이 사회와 유리되어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물리적 성공이든, 이상적 성공이든 뭔가를 이루어낸 래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길을 잃은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들은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을 믿었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길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그들에게 가장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 물론,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고통이 가장 절대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래서 누군가의 성공담에 감화될 만한 최소한의 여유도 쉽게 가질 수 없음을.


하지만, ‘탓’만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신 그 시간들을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무언가에 모두 쏟아보자. 그것이 예술이건, 직장 생활이건, 여행이건, 가족이건 혹은 그 무엇이건 간에 선택한 이후에 자신을 믿으며 정진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비로소 ‘마이너’에서 ‘메이저’가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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