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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Mar 27. 2017

James

산티아고로 향하던 길의 중반쯤,


발목 통증으로 인해 동행하던 친구들보다 속도가 느려져 잠시 혼자 걷게 된 때가 있었다.


기나 긴 적막과 고요 속에서 거듭되던 고민도 더 이상 유의미한 것이 되지 못함을 느꼈다. 여럿일 때는 그리 혼자가 되고 싶다가도 막상 혼자가 되면 주변이 북적거리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좁은 이차선 도로를 터벅터벅 걸어가다, 발을 다쳤는지 한쪽 손에 나무로 된 지팡이를 쥐고 절뚝거리며 힘겹게 걷고 있는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고, 발이 많이 아프냐고, 배낭을 대신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계속해서 괜찮다며 고사했지만 무릎과 발목에 덕지덕지 붙여진 테이핑을 고려했을 때 상태가 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연민과 왠지 모를 정감 때문에 재촉하려던 발걸음을 살짝 늦추었다.


영국에서 온 제임스의 직업은 다큐멘터리 카메라 디렉터였다. 그 당시에도 나는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포함하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기에 그가 하는 일이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로 제작하는 작품의 주제는 ‘사회비판적’인 것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가, 그러니까 이 사회가 감당하길 원치 않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현안들에 대해 최대한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대중의 몫이라고 덧붙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회 문제, 환경 문제, 소수의 약자들을 억압하는 시스템의 폐해를 더 이상 자신과 별개 된 것으로 방치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관심’이다. 다소 다른 맥락이긴 하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작품 <세븐>에서도 인간의 '무관심'을 가장 치명적이고 파멸적인 죄악으로 묘사하지 않았던가. 제임스는 관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전방위적 활동들에 대한 관심이 어떠한 긍정적 의식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나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보가 담대한 용기와 확고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사는 곳에서의 다큐멘터리 제작이 통상적으로 '돈과 명예'와 맞닿아 있는 직업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제임스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며 묵직한 어조로 답했다.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야만 한다고 선택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심지 굳은 믿음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느껴졌다.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결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일을 당신이 해야만 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물리적 결핍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마이너로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홀로 감내하면서 개인의 꿈이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은 정말 위대한 선택이다.


나는, 그날 제임스와의 대화 이후에 ‘내 꿈’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그동안 그것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였는가. 그것이 내 전부라도 된 마냥 소중히 여기고, 누군가가 나의 순수한 열정에 매료될 수 있도록 밤잠 설치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 본 적이 있던가. 특정한 일에 미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단순히 ‘하고 싶은’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 어떤 책임감과 사명감 같은 것들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쳤다’는 표현이 유효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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