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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02. 2017

세계여행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는 것 같다.


왜 굳이 서른 전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내 안의 순수와 낭만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떠나고 싶다. 어느 미지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스펀지처럼 모두 흡수하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설레지 않는가. 예부터 인간은 수많은 경험과 변화하는 환경에 의해 완성형에 이른다 하였으니, 제각기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닌 세상의 이 곳 저곳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주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변모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두 다리와 배낭에만 의존하고 싶다. 호사스러움과 안락함을 일절 배제시키고, 어느 나라의 골목과 자연과 사람들 사이로 눈 녹듯 스며들고 싶다. 어떤 날에는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고 마침내는 진한 고독과 향수에 빠져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하늘에는 가족, 친구, 집, 어머니의 따듯한 가정식과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이나 부드러운 손길 같은 것들이 가득 차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외로움인가. 한 번쯤은 리마인딩 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익숙해져 소중함을 상실해버린 과거의 그 시간들을.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나와 같이 고독한 여행자를 만나 우리만이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고, 그것이 충분히 깊어진 다음엔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고독마저 방해하지 못할 ‘묵언의 시간’을 나누는 때에 다다르면 일상에 지배당하던 때 함께 정체되어 있던 나의 ‘지성’이 불쑥 자라나 본인을 보다 확고한 존재로 만들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의 사회 환경은 ‘마이너’들을 포용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떤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였고, 결국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답이야 어떻든, 나는 각자의 감성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물론 어딜 가더라도 시간의 흐름은 내가 느끼게 될 생경함을 좀먹을 것이며 또다시 이 세상에 영원이란 없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내가 나의 뿌리로 돌아왔을 때 지나간 추억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깨달음을 떠올리게 된다면 무료와 권태가 반복되는 어느 겨울날, 나의 겉과 안을 다시 한번 팔딱거리는 청춘의 향기로 가득 채워줄 터이니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여행'이라는 다소 무모한 프로젝트도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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