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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01. 2017

같은 학교를 다니는 누군가와

사랑해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좋은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던 터라 여태껏 나름 만족할 만한 유대를 쌓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같은 공간에서의 보다 더 밀도 있는 관계에 대한 로망이 늘 꿈틀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 중 몇몇이 같은 학교에서 만난 연인과 지금까지도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로망의 바탕에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날에는 왜 그런 관계를 희망하게 된 것인가 생각해보다가 이내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성찰의 영역까지 침투하게 되는데, 그래서 관계란, 특히 사랑이란 가장 투명한 자전적 거울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인위적인 감정의 억제 혹은 과잉이 불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나의 본성이 확인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동시간대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뭔가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것이다. 실제로 캠퍼스에서 관계를 형성한 주변 친한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와 비슷한 맥락인 경우가 많았는데, 통상 ‘데이트’라고 하여 작심하고 하루 날을 잡아 가장 멋있고 예쁘게 꾸며진 모습을 한 채 당연히 가주어야 할 것만 같은 ‘유명한’ 장소들을 순회하는 것만으론 진실한 내면에 다가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보다는, 잠시 짬을 내어 들른 학교 앞 소박한 카페에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서로 다음 수업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찰나의 분위기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영화를 본다거나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원까지 산책하며 카페에서 나누던 대화를 그대로 연장시키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흠잡을 데가 없다. 어느 날에는 분명 톤이 적당한 립스틱도, 단정하게 빗겨진 머리칼도, 그 계절에 어울릴법한 옷차림도 신경 쓰지 못한 채 나타나게 될 것인데, 아무렴 어떤가. 그런 순간이 바로 ‘우리’가 더 따듯하게, 더 사람답게 포개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텐데.


그렇게 서로의 '꾸미지 않은' 본모습까지도 감싸줄 수 있는 시간과 관계들이 내심 부러웠나 보다. 어쩌면 단 한 번뿐인 청춘의 아름다움을 가장 왕성히 뿜어내는 시기이기에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들이 그토록 아름다울 것만 같아서 이런 소박한 바람을 간직하고 있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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