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벤더 업체 아르바이트와 광고 회사 인턴 활동을 위해 서울에 살았던 적이 있다.
친형이 서울에 살고 있었던 터라 몇 개월간 얹혀살 수 있었다. 최초로 머물렀던 원룸은 정말 너무나 작고 협소하여 가뜩이나 어색한 형제 사이를 이전보다 증폭된 침묵의 공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 번째로 함께 살게 된 집은 그나마 좀 넓어서 크게 부닥칠 일은 많지 않았다.
단기간이었지만 서울에 살게 될 때마다 ‘이 도시는 오래 살 곳은 아닌 것 같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도대체가 비킬 마음이 없는 도로 위 빼곡한 자동차들과 탁한 공기, 그 사이를 바삐 비집고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더 이상 발 디딜 곳조차 없어 보이는 공지 위로 개발 중인 신축 빌딩까지. 서울의 이미지는 내가 지향하는 삶과는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참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은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지 넘쳐나는 탓에 그것들은 서로 융합되고 변형되어 이색적인 문화를 양산해낸다. 로컬 아티스트들이 군락처럼 무리를 지은 덕에 그 지역 일대가 번영하게 된 곳도 있고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인테리어가 특징인 카페, 갤러리가 일렬로 끝없이 늘어선 곳도 있다. 미술관에서는 연중 내내 전시가 한창이고, 여름과 가을에는 여기저기서 음악 축제가 만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곳들은 항상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또 하나의 축복이다.
부대끼고 스치며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회색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 속에는 좋고, 나쁘고, 애정 하고, 증오하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모든 공간들은 매번 새로운 히스토리를 업데이트한다. 말미에는 ‘너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해, 행복한 환각에 휩싸인다.
며칠 전, 즉흥적으로 서울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비로소 그곳만이 가진 정서를 깊숙이 체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정처 없이 홀로 걷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길목 어딘가에서 내 두 눈을 잠시 머무르게 하는 것들도 만나곤 했다. 비단 여행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찰과 경험의 축적은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사동과 서울역은 대비되는 요소인 시민, 외부인,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빚어내는 에너지가 굉장히 역동적이다. 이곳들의 정경은 안사람들의 일상이 되고, 바깥사람들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특정한 장소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다채로운 모습으로 스며든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태원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가 다채롭고,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가 공존하는 곳이다.
홍대는 여전히 젊은 아티스트들의 발원지이고 오늘의 루키가 내일의 스타로 발돋움하는 등용문의 공간이다. 성수동과 익선동은 환경의 인위적 변화를 절제하고 이곳들만이 가진 특색을 그대로 살려 형성된 카페와 식당들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정서적 휴식을 제공한다.
차례대로 서울을 받아들인 다음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한 번쯤은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이 온다면, 나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관점에 따라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생성되어 나의 영혼을 다시 한번 싱그럽게 할 것이다.
다시 올라갈 때는, 아니 살게 될 때는 더욱 필사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그곳의 한적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싶고,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싶고, 외길을 걷는 무명 화가에게 미술을 배우고 싶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고, 밤공기가 애잔한 한강을 음악과 함께 끊임없이 걸어보고 싶다.
그런 경험을 다 하고 나면, 그때는 서울이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을 꿈의 공간으로 기억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