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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Nov 07. 2016

#NOIR

느와르의 역설적인 매력과 우리들

느와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성과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20세기 이후로 '검은 세력'은 줄곧 우리 일상의 곳곳에 머물고 있다. 현실과 시대상을 다각도로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의 특성 상, 느와르 장르가 유행 아닌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표면적으로 폭력과 범죄를 다룬 1970-1980년대의 느와르 장르 중 다수의 작품이 이제는 마스터피스로 칭송받고 있다. 사실 나 역시 느와르 영화를 '믿고 보는'정도로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콜세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세르지오 레오네,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작품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보려고 애를 썼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 거장들의 작품은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 현재 영화의 촬여에 있어서 많이 적용되는 신속하고 스펙터클한 카메라 연출 기법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있다. 그래서 처음 이 시기의 느와르 영화를 접하는 사람은 먼저 지루함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경우에는 4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고수하고 있다. 편집된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당연히 원판을 선호하는 편인 것 같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한 장면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느와르 영화에 열광하고 또 빠져드는 것일까

개인적인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자로서의 삶을 일반적인 서민의 그것에 대입시켜 비교하는 무리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순간들에 기인하고 있다. 우정, 배신, 사랑, 성공, 실패, 희망, 좌절, 회한, 재회 등 다소 거창해 보일 수도 있는 어휘들이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실제로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한 때 둘도 없는 가족과도 같았던 친구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물욕적으로 변하게 되는지, 결국 마지막에 왜 그 잘못된 선택과 죄를 고해하는지, 사회에 길들여진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확실히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

'대부' 같은 경우, 주인공의 심리를 '교차편집'이라는 편집 기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집 밖에서는 가족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파티가 펼쳐지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지인 혹은 사업가들의 부정 청탁을 받는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말론 브란도의 손은 섬세하지만 분위기는 냉혹하고 이질적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최우선시 하는 부드러운 모습과 마피아 조직의 보스로서 누군가를 처단해야만 하는 극악의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기 위한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승리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가 실타래 같이 뒤엉켜 지옥도 같은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후에, 말론 브란도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는 셋 째아들 알 파치노 역시 대부가 되는 순간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처럼 한 없이 거멓고 타락한 인간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순간들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가족과 자신의 패밀리를 먼저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느와르 영화의 특징적 요소이다. 언제 어디서 배신과 보복이 난무할지 모르기에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일상을 보내야만 하는 그들도 결국엔 인간이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대부'의 한 장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이해타산의 영역에 얽혀 있는 누군가를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은 더 없이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다. 물론 범죄자로서 대척점에 있는 상대방을 밀어내는 과정과 수단이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느와르 영화의 차분하고 이지적인 카메라 연출이 그들의 가장 극악무도한 순간마저도 마초적이고 남성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거기에 관객들은 매력을 느낀다. 사실 배우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말을 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느끼는 위협과 그 위협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흔들림 없는 태도와 표정은 보스로서의 책임감과 자질을 확실히 보여준다. 어찌됐건 그들도 자신만의 신념과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역할은 사실 상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현 시국과 같은 순간일수록 이러한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어떠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100%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반대의 주장을 하는 소수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합리적, 논리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 결단은 앞서 말한 신념과 주관에 따라 결정된다.

잦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은 절대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정신적으로 무언가에 정복당한 경우에는 더욱이 되어서는 안된다.


'스카페이스'의 한 장면

우리가 현명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단연 이성적인 판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위기와 위협적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시키는 그런 노력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앞서 원칙 혹은 진리와 같이 여기는 의리,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낸다는 자기암묵적 기준이 바탕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적어도 느와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변했다거나, 배신자'라는 말은 안들을테니 말이다. 그것이 진정, 느와르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의 궁극이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자멸과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있기에

양면성의 삶을 지속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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