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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pr 04. 2022

노력에는 급이 없다.

음악을 통해 그 시절 나에게 닿아

살아오면서 언어는 내게 신기한 도구였다. 마음이 엉키고 힘들 때면 애써 다른 언어로 생각하여 말해보곤 하는 습관이 있는데 외국어로 표현하다 보면 맞닥뜨리는 언어적 한계 앞에서 어쩌면 나의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의 엉킴은 뚝! 끊어져 버린다. 내가 아는 단어 하나와 표현 하나로 퉁 쳐서 그 미묘한 것들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언어가 짧아서 이루어진 한계는 실제로 내가 표현해야 할 상황을 객관화하고 얼추 넘겨 지나치기에 엄청난 효과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면 과연 효과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늘 곱씹어하게 된다.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 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기서 오래 혼자 살다 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끼리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p.75) 언어가 익숙지 않을 때, 현지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미묘한 이방인으로서의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어서 읽는 중간 몇 번을 울렁거림과 울컥거림으로 멈추었다. 



거지 같게도 노력에도 급이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층으로 현지인( 교포)/ 유학생 /어학연수생/여행객이 나뉘고, 언어의 미요한 turn-taking에 얼마나 실패하냐는 그 층을 대놓고 가시화시키는 상황이 익숙해졌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잠을 줄여가며 듣는 것이었다. 수업 중의 녹음을 친구들과의 토론을 티브이를 라디오를 쉴 새 없이 듣고, 들은 것들을 전부 미친 듯이  스크립트화했다. 모르는 스펠링은 들리는 대로 한글로 쓰고 파닉스를 얼추 조합하여 나중에 그 비슷한 말이 있는지 사전에서 찾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크립트를 다시 나의 입으로 말하고, 그 말을 이제는 나만의 말로 바꾸어 말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어폰을 화장실 갈 때도 끼고 다녔다. 무선 이어폰이 없던 시절, 주렁주렁 귀에 매단 채 수프에도 빠지고 변기에도 빠지는 수모를 겪어가며 나의 이어폰 줄은 살아남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도,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 나의 언어는 여전히 내가 구사해 낼 수 있는 만큼의 실력으로 적절한 예문과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의 조합이었다. 이방인이 아닌 공간에서 나는 온실 속 화초였다. "온실 속 화초 같다."는 말을 빼내기 위해 죽을힘을 쒔다. 그 말은 내가 비교적 노력 없이 편하게 현재의 위치에 도달한 것 같은 인상을 풍겼고 나의 인생 안의 모든 희로애락 중 철저하게 '희와 애'만 분리 취사선택한 말이었지만, 결국은 나에게는 나의 원가정의 배경으로 인하여 아니라고 큰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한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은 나의 삶 안에서 내가 온 힘을 다해 내었던 고군분투들을 그저 "운이 좋아서" 또는 "집안 덕도 있지."라는 말로 빛을 잃게 하였고, 평생을 쓴 안간힘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드는 미치고 팔짝 뛰게 할 노릇의 단어였다. 



노력에도 급이 있다면 그 급의 끝이 어디인지 가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내가 마주하는 것은 그저 커다란 벽일 뿐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얼굴이 교포 얼굴로 바뀔 때까지, 안면근육마비가 올 때까지, 혀가 아릴 때까지, 이러다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다 할 때까지 이어폰을 떼지 않았지만, 입으로는 미친년처럼 웅얼거렸지만, 여전히 영어는 나에게는 "외국어"였고, 나는 명백한 '잠시 머물 외국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끼어들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루고 있던 익명과 일회성의 태도들, 깊이 없는 말들, 기한이 정해져 있는 시한부 학생 정도의 '나'가 그 안에 속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것들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결국 어떻게든 아주 작게나마 그 이방인의 카르텔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간 것 같은 그 느낌을! 그 모든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 긴 한숨을 쉰다. 



언어만큼이나 음악은 참 신기한 도구이다. 어떤 음악은 나를 그 시절, 그 장소로 데려다 놓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희미해졌지만 그 시절 찰나의 마음들이 음악을 타고 올라온다. 어떤 형태로도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들은 그 시절 나에게 내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부로 나는 다시 영어공부를 하려고 한다. 너무 오랜 시간 놓아와서 이제는 말도 나오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심지어 눈도 보이지 않는다. 읽어도 무얼 읽었는지 모르겠고, 말을 하려고 해도 생각과 혀가 동시에 꼬여 도무지 입이 떼지지 않는다. 그 시절의 그 노력은 무색하리만큼 나는 초기화되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영어는 외국어다. 아주 잠시 공부라는 명목 하에 머문 그곳에서 누렸던 그 진한 시간들은 이제 그 시절 음악과 함께 날 것의 감정이 되어 떠오를 뿐. 결과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다시 파이팅을 외치고 싶어 느끼한 <Don't stop believing>을 들었다. 그 시절, 좀 더 영어가 자유롭던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듯한 그 시절의 "나"가 보인다.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달리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 다시 또 얼마나 긴 여정이 될지 모르겠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 시간과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많아 나이와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력에도 급이 있다면, 그 급 끝까지 끝장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배포를 지녔으니, 이제는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Just a small town girl

Livin' in a lonely world

S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 anywhere

Just a city boy

Born and raised in south Detroit

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 anywhere

A singer in a smoky room

A smell of wine and cheap perfume

For a smile they can share the night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s,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Working hard to get my fill

Everybody wants a thrill

Payin' anything to roll the dice

Just one more time

Some will win, some will lose

Some were born to sing the blues

Oh, the movie never ends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s,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e feelin'

Streetlights, people

Don't stop believin'

Hold on

Streetlights, people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e feelin'

Streetlight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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