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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r 24. 2022

오래도록 숨겨진 근육을 찾아

드러내며 강해지며

코로나를 탓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비루하고 한심하게 된 것은 코로나라는 이 이상한 시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면 적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니까. 전 세계의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으니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하면 적어도 이해를 받지는 않을까. 안전한 변명 비무장지대에 나를 데려갔다 눈을 뜨면, 거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성취를 이루고 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찾고 꿈을 이루고 커리어를 쌓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 같이 보기 좋은 핑계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망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가뜩이나 살림도 요리도 정리도 빵점인 전업 주부인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느끼는 나의 쓸모가 점점 작아졌다. 고작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 그것 말고는 나 자신을 내세울 영역이 없었다. 그것이 "고작"이 아니라고 애써 힘주어 생각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사회에 환원시키는 모든 과정이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임을, 비록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나의 경력은 어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점점 작아졌고, 불리지 않는 나의 이름과 함께 희미하게 소멸되었다.


글을 쓸 동안은 숨을 쉴 수 있듯이 뛰는 동안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웃기지만 출간 작가가 아닌 주제에 글을 써야 살 수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말도 안 되지만 운동을 해본 적도 없는 데 뛰는 동안만은 숨을 쉴 수 있는 내가 안타까웠다.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에 자기 검열이라는 토핑을 잔뜩 뿌려, 차마 어디에다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누가 알 세라 두려워하며 나 자신에게조차도 환영받지 못한 채 나를 숨 쉬게 했던 활동들을 꾸역꾸역 해 왔다. 운동과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슬림한 편의 몸이지만 늘 체지방은 비만이었고 근력은 심각한 부족 상태여서 마른 비만을 자랑하던 몸을 탈피해보고 싶었다. 시작은 역시 내가 아닌 아이들이었다. 만 6년의 가정 육아를 마치고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네 살에 무작정 시작한 운동. 체력이 망가진 날의 망쳐버린 육아의 시간들이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근력이 없어 늘 아이를 안기 위해 늘 두 손이 필요했다.  이때를 회상하면, 늘 한 발치 앞서 걸어가야 했던 첫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란히 걸으며 잡아주지 못한 손이 미안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순수히 나의 의지만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무서울 것이 없을 거야." 그렇게 무작정 뛰기 시작하였다. 뛰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님을, 더 이상 숨이 차서 못 뛸 것 같은 그 순간을 넘겨 한 발 더 뛰어오를 때의 희열을, 매일 같이 한계를  깨부수며 새로 쓰는 나만의 기록을!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는 거라며 저축을 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당장은 내세울 것 없는 이름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그 적금을 깨고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저력이 될 거라고 간절히 믿었다. 


여전히 나의 심장은 뛰고 나의 발이 뛰어오르는데, "못해 못해 여기서 더 어떻게 뛰어. "하다가도 결국 나는 그 고비를 넘기며  다시 뛰어오르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쓸모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찢어질 것 같은 운동 후에 더 단단해진 근육처럼, 아픔과 고통이 단단한 근육으로 자리 잡아 완전히 소멸된 자신감을 올려줄 거라고 상상하였다. 그리고, 몸은 정직했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결과물이나 수치로 성과를  증명할 수 없더라도 나의 몸이 변하고 건강하고 단단한 근육들이 증명해주는 '나의 의지'가 있는 동안 결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반전에는 스릴이 있다. 겉보기에 허름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복근 있는 여자라는 반전을 숨기고 다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왠지 나쁜 여자가 된 기분이랄까? 오묘한 비밀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렇듯 약간의 죄책감과 스릴과 자신감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렇게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쌓일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까지의 삶의 이력과 마주하고 그것을 축하할 날이 오겠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을 삶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믿으며 기꺼의 반전의 주인이 된다.



그렇게 나는 나이 마흔 둘에 처음으로 이런 사진들을 찍었다.
늘 후질근하게 다니는 아줌마의 비밀
겉으로 보이는것으로 모르는 비밀


자격이 되지 않을까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과감히 풀어 헤친다. 남들의 인정 따위!
결과물이나 수치로 성과를  증명할 수 없더라도 나의 몸이 변하고 건강하고 단단한 근육들이 증명해주는 '나의 의지'가 있는 동안 ..
결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다.
모든 반전에는 스릴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반전의 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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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며운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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