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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r 21. 2022

시간 여행: 아! 쫌! 또!

단편소설

<단편소설: 시간 여행: 아! 쫌! 또!>

부제: 참 코드도 안맞지!


친정엄마가 아침 일찍 집에 오셨다. 나는 아침부터 두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먹 인다고 인덕션에 미역국과 불고기 야채볶음을 해놓은 채, 밥을 차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저녁에 먹던 것들 냉장고에서 꺼내, 데워먹었을 법인데, 이 날따라 이상하게 좀 더 부지런 떨어 갓 만들어낸 아침밥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걸 본 엄마의 첫마디는 "고기가 너무 짜게 생겼다."였다. 이제는 정말 그런 말로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될 나이일 것 같은데도, 요 며칠 전 일 때문에서 일까? 마음이 쉽게 추슬러지지가 않는다.


'왜 저렇게 말을 해야 하지? 나였다면 "아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이렇게 해 먹였구나~" 하고 웃어줬을 텐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 그렇다. 우리는 정말 기질이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너무나 다른 모녀지간이었다.

ㅡㅡㅡㅡ


며칠 전의 일이다. 배가 아파 죽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가정보육 중이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내가 시간이 안 났어. 일찍 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결국 아침을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거든.."


훅 치고 들려오는 냉랭한 목소리. "됐고! 그건 아까 카톡으로 말했으니까 그만 말해! 그래서, 죽이 필요해? 안 필요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늘 이런 식이 었다. 나는 상황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친정엄마는 쓸데없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직선으로 가길 원하시는 엄마 셨기에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더 듣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아주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대화를 하고 싶었고, 엄마는 늘 목적이 있는 대화를 해야 했다. 그저 배탈이 났다고 화내시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며 쓸쓸히 돌아선다.


평생을 단련이 되었는데 그래서 이제 이력이 난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마음이 쿵! 내려앉는 순간, 눈을 다시 뜨니, 눈앞에는 웬 어린아이가 가만히 서 있었다.


ㅡㅡㅡㅡ


 머쉰으로 시간의 여행을 한 듯, 이곳은 바로 열 살의 내가 살던 대전의 한 아파트였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까무잡잡한 피부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저기 있다. 아직 여자 아이는 나를 보지 못한 듯, 자신이 먹고 있는 생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헤집지 말고, 딱 잡은 것만 먹어!" 곧이어 엄마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라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에 움츠려 든 기색이 보였다. 아이는 슬그머니 생선에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생선 대신 흰 밥에 다른 반찬을 먹는다.


'아... 이때부터였구나. ' 젓가락질에 서툰 나는 유독 생선 먹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혼이 날까 두려워서, 가족들 앞에서 생선을 먹는 것을 그만하게 된다. 안 먹으면, 혼나지 않으니까. 어린이 다운 단순한 논리였다.


가만히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내가 보이는지 빤히 나를 바라본다. 엄마와 아빠, 동생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나 보다. 나는 아이에게만 보이는 투명인간인 것인가?


"너는 누구야?" 내가 물었다.

"나는 성하영." 아이가 대답한다.

"아줌마가 이 편지를 내게 전해준 사람이야?" 아이가 다시 묻는다.

"무슨 편지?" 나는 의아해한다.

아이는 주섬주섬 꼬깃하게 접힌 편지를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열 살 하영이의 손에는 마흔 살의 내가 썼던 편지가 꼭 쥐어져 있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있었다.

"나는 그저 기질이 엄마 아빠와 많이 달랐을 뿐. 그건 내 기질이니 변할 수 없고, 이런 나를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질이 다르다고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게 되니,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느낌이다."


"아줌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도무지 모르겠어." 하영이는 빤히 나를 쳐다본다. 순수하고 동그란 눈을 보니 가슴이 뻐근했다.


나는 여기에 왜 와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무얼 더 바랬던 것일까? 내가 궁금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다시 돌아보고 싶은 것일까?


분명 즐겁고 행복한 일도 가득했을 텐데, 어째서 내게는 이런 작은 상처가 부풀어져 큰 상처가 되어 남은 걸까? 부모님이 사랑으로 정성으로 키워주신 것은 너무나 확실한데, 왜 이렇게 마음의 상처가 생긴 것일까?

ㅡㅡㅡㅡㅡㅡㅡ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열 살에게 마흔두 살이 말한다. "안녕? 아줌마도 성하영. 마흔두 살이야."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정말요? 세상에.. 마흔두 살의 나라니! 저... 결혼은 했나요?"

"그럼. 너같이 이쁜 딸이랑 아들도 있는걸?"

"우와! 믿기지가 않아요. 저는.. 잘 살고 있나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도로 되물었다."너는, 잘 살고 있니?"

"네. 저는 잘 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열 살 하영이가 방긋 웃는다.


다행이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여겼었구나... 안심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상처받은 줄도 모른 채 상처가 되어 곪아가도록 이끌었을까..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영아, 이거 도대체 뭐라고 푼 거니?"

하영이는 급하게 쪼르르 달려간다. 옆에 있던 동생이 "누나 또 잘못 풀었대요~~" 하고 하영이를 약 올린다.


가만히 하영이를 바라본다. 하영이는 여전히 많이 웃는다.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나의 기억 속의 열 살 하영이가 너무 슬퍼서 늘 울고 있는 하영이를 상상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하영이는 비록 움찔하긴 하지만 즐겁게 생활하고 밝고 명랑했다.


"하영아~" 다정하게 나의 이름을 부른다.

"." 예쁘게 열 살의 하영이가 마흔둘의 하영이에게 대답을 한다.


"너는 참 예쁘구나. 이렇게나 예뻤구나. 열 살의 하영아, 부모님과 선생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절실한 어린 시절에는 그 기대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해가는 게 중요했을 수 있어. 근데, 내가 커보니... 이제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인정받기 위해 살아갈 필요는 없어. 너를 살아도 돼."


하영이에게 다가갔다. "한번 안아줘도 되니?" 하영이는 활짝 웃는다. "그럼요. " 우리는 그렇게 꼭 서로를 안았다. "아참, 토민이는 잘 있어?" "앗, 아줌마가 어떻게 토민 이를 알아요?" "당연히 알지, 내 토끼 인형이었는데.... 아직도 있어. 안 버리고 있어서 아줌마 딸이 가지고 있단다." "말도 안돼요." 하영이는 믿기지 않는다며 동그란 눈을 해서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내, 품 안에 갈색 토끼 인형을 가지고 온다. 토민이는 흰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쭈글 해지지 않고 탱탱하니 예쁜 자태로!


"아줌마, 또 놀러 오세요." 

"그래. 아줌마가 잘 살고 있을게. 너도 잘 지내고, 하영이가 마흔두 살이 되었을 때 아줌마 만난 거 꼭 기억해줘."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죽이 잘 맞는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 수 있고, 포옹으로 알 수 있는 것들. 하영이에게선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ㅡㅡㅡㅡㅡㅡ


"하필 엄마랑은 참, 더럽게 죽이 안 맞았어." 혼잣말을 하며 피식 웃을 때, 다시 쿵!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 앞에 내가 서 있다. 나의 아이들은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계속해서 엄청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행주를 삶아서 여기다 걸어야지 왜 거기 거냐!" , "빨래를 바로바로 널어야지." 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방금 만난 하영이가 생각났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정말 너무 심하게 안 맞아서.... 그런 거야. " 우리 모녀는 정말 기질이 달라. 다른 기질을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게 된 안쓰러운 그 시절을 그렇게 다시 만난 이후, 이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아! 쫌! 또!" 세 글자로 퉁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일상을 살며 작은 하영이가 궁금하다. 그녀도 그러고 있기를..... 꽁하고 담아두어 자신을 갉아먹지 않고, "아! 쫌! 또!"하고 털어버리기를 응원하며 오늘을 다시 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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