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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r 10. 2022

꿈이 피어나는 공간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에서 하고싶었던 일을 하기까지

지난해 여름, 김치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10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게 되어 쿨 하게 처분을 하였다. 그 자리에 다른 냉장고를 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 공간에 기가 막히게 딱 맞아떨어지는 책상 하나를 샀다. 불을 켤 스탠드도 곁들였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구매는 마치 내가 김치냉장고가 사망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같이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30평 집구석 어느 곳에도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식탁을 치워야 했고 치우고 앉고 나면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곤 했다. 그나마 전자레인지 옆에 간이로 둔 책꽂이가 가끔씩 요리를 하는 중이나 아이들 밥을 먹는 중에 꺼내볼 수 있는 책을 넣을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늘 음식 준비와 음식 조리기구로 북적였고, 김치 국물 떨어진 책 표지를 맞이하고 싶지 않으려면 책들을 치워야만 했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노트북을 상비해 둔다면 휘발해버릴 생각들을 담아두기 조금 수월할까? 이 흘러 사라져 버리는 메모지들을 모아놓을 구석이 되어줄까? 즉시! 바로! 실행 가능한 공간이 내게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이미 준비과정 중에 실행이 불가능한 것들로 변하는 것이 육아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 나를 위한 소비를 할 때면 마음이 늘 불편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 일들은 결과가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이었고, 등단도 하지 않은 주제에 글을 쓰며 가져오는 성취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동반한 나 혼자의 몫이었다. 나는 전업주부였고 외벌이로 돈을 버는 신랑을 보면 알 수 없는 미안함과 무능함이 올라왔다. 분명,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드는 초라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낄 수 있는 것들에 소비를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은 주로 패션과 외모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옷을 사지 않고 미용실에 가지 않고 화장품을 소비하지 않는 아줌마로 근 십 년을 살아왔다. 다만, 책과 운동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미안한 마음을 누르며 소비를 하겠다고 부탁을 하였고 신랑은 아무 말 없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신랑은 한결같았다. 단지 자신감이 떨어진 나의 마음이 그 든든한 지원을 자꾸만 눈치 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나, 이 공간에 책상 하나 두어도 될까?" 그리고, 다음날 신랑은 여기에 딱 맞는 예쁜 책상을 주문해주었다. 그렇게 김치냉장고 자리는 나의 책상 자리로 재탄생하였다. 조금의 틈새 시간이 생겨도 앉을 수 있는 공간, 언제든 원하면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드디어 생긴 것이다. 이토록이나 쉬울 일이었는데 왜 이것을 말하기가 그토록이나 죄스러웠을까? 왜 나를 돌보는 일은 숨겨놓은 일들이 되어야 했었던 것일까?


책상을 갖음과 동시에 어렵게 숨어서 하던 일들이 당당히 하는 일들이 되었다. "엄마 뭐해?" "응. 엄마 지금 이거 글 하나 쓰고 싶어서 잠시 앉았어. 엄마가 금방 여기까지만 쓰고 가볼게. 조금만 기다려줘." 아이들은 기다려주었다. 신랑은 지원해주었다. 그동안 책상에 앉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던 불안한 마음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어떤 날은 그 마음이 고마워서 이곳에 앉아있는 시간이 헛되지 않게 곧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부엌, 이곳에서 나는 가족을 돌보는 일인 음식과 설거지도 하지만 나를 돌보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오래 이곳에 머물러도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는 곳, 앞을 보면 오롯이 지금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일만 보이고, 고개를 돌아 왼쪽을 보면 아이들이 어질고 놀고 있는 거실이 보이고, 바로 옆 벽에는 웅웅~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의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밥솥과 인덕션 위에서 끓고 있는 미역국의 냄새가 난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한 사람은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들을 바로 이 공간에서 하고 있다. 결국에는 내가 속하는 이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나의 바람을 한큐에 지원해준 가족들을 생각한다. 이 시간까지만도 11년이 걸렸다. 초조해질 때면 생각한다. 더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들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응원해 줄 나의 가족이기에 괜찮다. 나의 꿈이 조금 늦어져도, 혹여나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부디 이 생이 끝나기 전까지 나의 모든 진심을 담은 선물을 주고픈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받은지도 모르고 받아버린 가족들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는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여전히 나는 움츠려 들고 살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에 앉아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나만큼은 그 일들을 하찮게 대우하지 않고 동등한 무게로 나의 꿈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여전히 나의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경계로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지만 언젠가 그 경계 너머의 세상에 발을 내딛을 때 가장 먼저 이곳이 생각날 것이다. 내게는 그 어느 곳보다 반짝이는 나의 꿈이 머무는 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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