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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r 09. 2022

영어 교과서가 아닌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싶었다

사랑에 빠진 과목 이야기

로알드 달 시리즈를 샀다. 당장 우리 아이가 보지도 못하는데... 그렇다고 시간을 내어 내가 읽기에는 읽고 싶은 다른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샀다. 가끔 나는 깜빡 이성을 잃고 다시 정신이 들고 보면 이렇게 아이들 원서를 사대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 한 반에 열명 남 짓,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오랜 생활을 하고 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수능이 아닌 특례입학이라 불리는 조금 특별한 입학 전형을 치러 대학에 갔다. 그녀들끼리는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하였고 이런 원서를 즐겁게 읽었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을 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민망하여 "재미있어?" 하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고맙게도 "이건 이런 내용인데 지금 누가 이렇게 하고 있다."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당시 BSB(Back Street Boys)의 Nick과 순정 만화 풀하우스(원수연 작)의 라이더 베이와 짝사랑에 빠진 내게 외국인 남자 친구에 대한 알 수 없는 설렘을 품게 하는 연애 이야기들은 이렇게 듣게 되었다.



나도 그들처럼 영어 교과서가 아닌,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싶었다. 저 얇은 갱지 같은 종이를 넘기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두껍지만 그다지 무겁지 않은 원서 특유의 무게감이라면 가방에 하나쯤 넣어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책들을 읽으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렇게 외국에 사는 기분이 들까? 하지만, 현실은 나는 수능을 보아야 하는 한국의 고등학생이었다. 외국 생활이라고는 기억조차 나지 않은 아가 시절, 한국말조차 미숙할 때 아주 잠시 경험한 것이 전부인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알파벳을 배운 사람이었다. 나의 책들은 한국 특유의 엄청 좋은 종이 재질로 이루어진 책들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 도서관의 <<토지>>를 전권을 며칠밤을 꼬박 새워 섭렵한 이후로는 그나마도 나의 영혼과 즐거움을 채워줄 즐거운 독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수능만 끝나 봐라.' 읽고 싶은 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노래도, 콘서트도 죄다 누릴 거라며 이를 악물고 지낸 고등학교 시절. 교실 한편에서 들리는 영어 대화 소리에 저 멀리서도 귀가 쫑긋하여 아이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엿듣는 괴상한 벽을 어떻게든 감추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가상의 상상 친구를 만들어 영어로 혼자 대화를 해보곤 했다. 차마, 그녀들에게 "나도 같이 영어로 이야기하자."라고 하기에 나의 회화실력은 형편없지 않았지만, 나의 자신감이 극도로 형편없었기에. 할 수 있는 말조차도 입술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에. 그때부터였나 보다. 벽에게 영어로 말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긴 것이.



영어가 너무 잘하고 싶은데 너무 재미있는데 실제 그 나라권 사람들이 쓰는 그 authentic 한 것들을 누려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진 리소스들 안에서 그것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나도 나가서 영어공부가 하고 싶다."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그저, 무색무취의 성실한 여고생답게 조용히 나의 욕구를 숨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들을 시도해보았다.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Now나 Max 같은 당시 팝송 믹스를 활용하였다. 카세트테이프 표지에 깨알같이 쓰여있는 노래 가사를 잠시 뒤로하고, 스탑, 리와인드, 플레이를 반복하며 나의 귀로 듣고 써댔다. 그리고, 내가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하였다. 공테이프에 나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수없이 반복하여 듣기도 하였다. 귀를 틀어막고 토할 것 같은 고비를 넘기고 나면, 인토네이션이나 발음이 꽤나 자연스럽게 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물론, 원어민이나 살다온 그들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얼핏 듣기에 큰 어색함이 없을 때까지, 무한 반복을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비밀스러운 나와의 비밀스러운 데이트는 그렇게 영어라는 도구가 매개가 되어 시작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스스로 고안하여 즐겼던 그런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군대에서 썼던 방식으로 ALM(Audio Lingual Method)라 불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가도 여전히 "Friends"같은 시트콤이나 미드를 통해 그런 방식의 수업들이 학원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것 따위 알 길 없던 그 시절, 나의 즐거운 비밀 취미는 내게 듣기 평가 만점, 수능 영어 만점자, 토익 만점 등 비교적 편안한 안전지대를 선물해 주었다.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보다 보니 나희도(김태리)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며,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보게 되었다.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최선을 다하는 나희도의 삶이 경이로워서 넋을 놓고 보다 문득, 나는 그 시절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다 걸어 무언가에 올인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발레를 그만두고 싶은 나희도의 십 대 딸내미에게 사십 대의 나희도가 말한다. " 네가 발레를 하고 싶은 이유가 칭찬 때문이면 그만둬도 된다, 하지만 발레가 재미있다면 다시 생각하라."



내게는 영어가 그러하였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말 한번 떨어지지 않던 어버버에서 머리가 생각하기 이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이로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를 300개씩 외워 넣으며 사람의 뇌에 이토록 많은 새로운 단어가 담길 수 있다는 것에 소름 끼치던 경험, 지하철 역 한 정거장안에서 얼마나 많은 영어 대사를 외울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단어를 건질 수 있는지. 그러다 잠시 몰입이 지나치면 문이 닫히기 직전에 번개처럼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토록 바라던 영어권 국가에 떨어져 처음으로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위한 "말"을 해 본 그날의 희열을!


상상 속에서만 하던 것들을 실제 해도 된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꿈속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이 벅차 몇 번이고 살을 꼬집었던 그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그날, 다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났다. 반의 그 친구들처럼 나도 이제 영어로 말할 친구가 생기는구나. 설렘이 온몸에서 넘쳐흘러 주최를 할 수가 없었다. 막 지르고 보는 성격이 아닌지라, 꼼꼼하고 안전해야 움직이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쉽지만은 않았지만, 다른 언어를 구사할 때는 조금 다른 자아가 튀어나옴은 확실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거울을 보니 얼굴이 변해있었다. 췩 머슬이 올라오고 화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인 같아 보이지 않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영어교과서가 아닌 영어책을 원하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다. 유튜브도, 실제 외국 콘텐츠도, 원서도, 모두 쉽게 이곳에서 구하고 볼 수 있다. 그런 환경임에도 나는 여전히 저런 원서 책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리고, 과소비를 하게 된다.  그 시절, 내가 그토록 읽어보고 싶었던 원서의 그 형태가 전해진다. 그 시절, 그녀들의 틈에 끼어 토록 한번 말해보고 싶었던 영어로 말하기의 간절함이 밀려온다.


 나는 이제 영어로 말을 하는 데 있어 큰 불편함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나와 함께 영어로 말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고 나는 다시 벽에다 대고 영어를 말한다. 공테이프에 녹음하는 대신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한다. 여전히 내 목소리를 듣고 토하려 하고 귀를 틀어막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게 영어는 가슴이 설레고, 재미있는 그 무엇인가이기에! 조금은 슬프게도 이제는 이것의 쓸모가 딱히 없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아마 팔십 살 할머니가 되어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에 배운 ABC로, I am a boy and you are a girl의 문법으로 그리고 그 설레던 모든 여정은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비록 지금 당장은  쓰이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게 영어란 국어만큼이나 진한 사랑에 빠진 거의 유일한 과목이었고 그것이 주는 단계 단계의 기다림과 노력, 그리고 성취의 짜릿한 맛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 맛을 한번 본 이상은 다시 맛을 모르던 그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학습으로 저처럼 이렇게 배워도 여전히 "가슴 터지게 설레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고,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짜릿한 도전의 기쁨으로 진하게 사랑할 수 있었어요. 이런 실제 경험이 혹시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꼭 mother tongue을 배우듯 습득(acquisition)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뒤늦게 공부로 학습(learning)을 하더라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예요. 요즘들어 사람들이 Konglish를 폄하하고 어릴때부터 모국어처럼 영어를 습득해야 하는것이 mainstream인 것 같아보여요.하지만, Global world를 살아가며 쓸 Globish를 모두 각자에 맞는 방법을 잘 찾아, 어떤 방식이 되었든 영어를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이 "각자의 삶에서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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