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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Feb 12. 2022

그 해 우리에게 2

그 해 여름, 우리는 참 많이 웃었다.


그 해 여름, 참 많이 웃기도 웃었다. 그 해 여름의 초록은 유독 진했다. 깜깜한 밤, 기차역에서 만나, 정동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 보니 기차를 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기차 여행은 유독 설레었다. 밖은 보아도 유독 깜깜한 어둠뿐, 그래도 뭐가 보였는지 우리는 덜컹이는 완행 기차의 창문을 응시하며 많이도 웃었다. 손을 꼭 잡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시 졸기도 하였다. 오랜 지루한 기차 속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침에 뜨는 해를 그와 함께 볼 수 있다는 현실이 꼭 신기루 같았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렁이는 해를 바라보았다.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손을 꼭 잡은 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태양을 가슴에 담았다.


그 해 여름, 튼튼한 두 다리로 참 많이도 걸었다. 강릉의 버스를 타고 지도를 손에 쥔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오죽헌을 찾아갔었던가. 버스 정류장에는 우리 둘 뿐. 유치한 낙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랑 영원하자." 요즘 누가 이런 낙서를 하냐? 아마도 중고등학생 아닐까? 아웅. 참 좋을 때다. 이런 대화들을 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버스가 오기까지 유치뽕짝 한 낙서를 바라보며 작은 의자에 둘이 나란히 앉아 어깨를 대고 잠시 쉬었다. 마침,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우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버스 안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 둘 뿐. 다른 사람들은 다 자동차를 타고 오나? 그제야 버스정류장마다 한가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해수욕장은 인파들로 복작거렸다. 유독 파도가 높았던 그날,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거리가 벌어져 종종 이는 발장구로 그의 옆에 찰싹 붙어있느라 바빴고 대여한 튜브를 나는 타고, 그는 대롱대롱 매달려 몸을 물결에 맡겼다. 바다가 이렇게나 즐거웠구나. 어린 시절, 바다에서 신나게 몸을 던져 놀던 기억이 올라왔다. 성인이 된 후의 바다는 늘 눈으로만 즐길 수 있어 아쉬웠던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기차 시간이 늦지 않게, 부지런히 샤워장과 탈의실을 들러 옷을 갈아입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며, 버스를 탔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 다시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 밖을 응시하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물놀이를 해서 그럴까? 하루 종일 발바닥이 불이 낳도록 많이 걸어서 그럴까? 피곤한 몸을 그의 어깨에 걸치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나면 새벽이 와 있을 테고, 아침이 오면 그는 다시 부대로 돌아가겠지. 보고 싶은 마음을 안고 다음 휴가까지 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겠지. 첫 휴가도 아닌데, 눈물은 거두고 활짝 웃으며 보내줘야지 생각하며 눈을 잠시 붙인다.


그 해 여름, 우리는 참 많이도 웃었다. 희미해진 오랜 기억 속에 여전히 선명히 남은 것은 활짝 웃던 우리의 싱그럽던 웃음소리, 부지런했던 발걸음 소리, 덜컹이는 기차 속에서 꼭 잡았던 손의 감촉들. 깜깜해 보이지 않던 창문에 반사된 우리의 모습들. 나는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볼 수 없음에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여 다음 휴가까지 꺼내 쓰는 군바리의 여자 친구였고, 그는 잠시 나온 휴가에서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어 애를 쓰던 군바리였던 시절, 싱그럽던 우리의 시절에 빛이 바래 희미해진 추억 하나를 꺼내본다.


굽이 굽이 흘러지나 온 세월,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별 것 아닌 소중한 순간들을 꺼내 보며 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워낙 변해버린 삶 속에서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떠오를 여유조차 없었지만, 부대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좋은 추억을 주고 싶었던 군바리의 그 마음, 피곤했을 몸을 이끌고 다시 부대로 향하던 그 뒷모습, 그럼에도 웃으며 맞는 우리가 좋아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을 우리는 안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그때의 우리를 자주 만난다. 여전히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발바닥을 굴리며 걷는 여행을 하고 있고 바다를 놀이터 삼아 풍덩 뛰어들며 오가고 지도를 보아가며 발 길 닿는 곳들을 찾는다. 그 해 우리가 환하게 웃었던 싱그러운 웃음을 아이들에게 넘겨준 채. 그렇게 그 해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어 어쩌면 그때에 우리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았다 뜨니, 굽이 굽이 세월이 흘러 매일 태양이 뜬다는 것이 특별하기보다 당연한 것이 된 삶을 살고 있다. 그 태양을 함께 본다는 것이 꿈같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이 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매일 뜨는 태양을 맞이하는 기적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태양을 함께 맞이 하는 꿈 꾸던 삶을 살고 있었다.

© grafixgurl247, 출처 Unsplash

그 해 우리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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