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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pr 05. 2022

그 인연이 닿지 않았기에.

첫사랑의 그리움이 처연히 아름답도록 내버려 둔다면.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나희도(배우 김태리)와 백이진(배우 남주혁)이 이어지기를 소망하였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으나 그 둘의 사랑을 "첫사랑의 아련함과 그리움과 아름다움"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이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극 중의 나희도의 나이가 같아서일까, 한 시대가 되살아나서 한동안을 그 시절을 같이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00학번으로 입학한 대학교 생활까지, 한 시절을 공유하며 울고 웃었다. 매 회 다른 포인트에서 울고 웃고 딕테이션 하듯 대사를 땄다. 고등학교 시절, 풀하우스 입고 시기까지 기다리던 마음도 치마 아래 입던 촌스런 색의 체육복 바지도 운동부 아이들의 체육관 기합소리도 눈앞에서 체육관의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야자실의 피곤한 공기 또한 코 끝에 펼쳐졌다. 학교 축제 날, 지원을 오던 근처 남고 밴드부의 Skid Row의 노래들에 가장 뒤에 숨어 수줍은 마음 담아 심장 터질 듯 응원을 하고, 밀레니엄과 동시에 세상이 끝나지는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걱정따위을 진지하게했다. 수능 따위 망쳐도 세상이 망하니 괜찮다고 배꼽 잡고 웃던 시절이, 잊고 지낸 시절이 다시 내 안에서 살아난다.



당시의 아픔도 결국 지나고 보면 청춘! 그 청춘이 너무너무 아프고 아름다워서 드라마 최종회를 보고 마음을 추스리기까지 한참을 멍하니 섰다. 나는 작가에게 감사하다. 희도와 이진을 엮어주지 않아서. 그 둘이 기억할 첫사랑의 형태가 "아름다움"일 수 있어서, 그리움으로 적셔 추억할 것들이 동일하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될 테니. 결국 다른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겠지만, 그 각자의 삶 안에서 그리우면 추억할 거리 안에 희도와 이진은 아름다운 청춘을 그 해 여름을 떠올릴 것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그리움은 없을 것 같다.



마흔이 넘어 다시 돌아온 다이어리에서 만난 희도와 이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은 돌고 돌아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난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별이 또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다해 순간의 진심을 담아 응원하며 둘은 헤어진다.



희도가 과거 이진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너는 존재만으로도 날 위로하던 사람이었어. 혼자 큰 나를, 외롭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이었어."  그리고, 이진이 희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너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날 일으킨 사람이었어. 네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였다. 그리고 그 말들이 닿았다. 헤어짐을 다시 쓰고 싶었던 후회는 나희도의 마흔둘에 드디어 새롭게 썼다.



 "모든 걸 갖겠다고 덤비던 시절이었다. 갖고 싶은 게 많았다. 사랑도 우정도 잠시 가졌다고 착각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연습이었던 날들, 함부로 여원을 이야기했던 순간들, 나는 그 착각이 참 좋았다. 아, 그래도 가질 수 있었던 게 하나 있었지. 그 해 여름은 우리의 것이었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 최종회 마지막 대사>



이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해피엔딩만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이어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현실세계 안에서 그들의 청춘은 이렇게 빛나게 기억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이제서야 왜 작가들이 새드엔딩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그 마음을.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만이 해피엔딩이 아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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