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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y 27. 2022

어느 날 갑자기!

초단편 소설

저는 전업주부예요. 그런데 정말이지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한다지만, 내가 먹을 요리도 하기 싫답니다. 그런 제가 오래도록 염원하던 꿈같은 순간이 발생했어요. 세상에! 말도 안 되지만, 한번 들어보세요. 제가 이 빈 그릇을 꺼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는 멸치 볶음"

짜잔! 어때요? 진짜 여기에 이렇게 멸치볶음이 생겼어요.

에이, 그릇을 바꿔보라고요? 네. 그럼 이번엔 다른 빈 그릇이에요. 다시 해볼게요.

"꽃게탕"

짜잔! 이런 신세계!

저는 이제 요리에서 해방된 주부로 재탄생해버렸어요. 신기하죠? 제게 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젯밤, 잘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갑자기 제게 이런 능력이 생기니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너무 좋아요. 맨날 하기 싫어 끙끙 대던 음식들을 순식간에 최고의 맛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에요. 아이들은 연신 감탄을 지어냈어요.

"와! 우리 엄마 진짜 좀 최고다. 그렇지?"

하면서 말이에요. 잘 안 먹던 녀석들도 한 그릇 뚝딱 비우는 걸 보니 마음까지 든든하네요. 이렇게 요리가 손쉬운데 맛도 있고, 매일 내놓은 메뉴를 sns에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 조회수가 치솟는 거예요. 원인을 알고 보니 어유 명한 포털에 제가 올린 글이 떴대요. 며칠 후에는 세상에 제가 글쎄 요리 인플루언서라네요.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음식 맛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저는 쭈그리였어요. 집에서 얼마나 귀한 가치의 일들을 해내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하는 역할이 늘 한정돼 있는 것 같고, 경제적으로 환산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갑자기 이렇게 여기저기에 유명해지니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기쁘고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어요. 갑자기 마음 한편이 불안해져요.

"이 그릇이 없어지면 나는 어찌 되는가?"

"이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능력이 없어짐 어떡하지?"

오! 이제는 정말 토할 것 같아요. 배를 탄 듯, 끊임없이 울렁이는 마음을 안고 청심환을 하나 꿀꺽 삼키며, 일단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저 오늘을 살기로 했지요.

요리가 편해지자, 뚝딱 말로만 만들어낸 요리들을 아름답게 담고 싶어 졌어요. '이 요리는 특별히 이 그릇에 담으면 더 맛있어 보일 것 같아. 아, 이것은 조금 다르게 배치해볼까? 우리 집은 원탁 식탁이니 이런 배열이 더 좋겠어. ' 그동안 항상 아무렇게나 담아 먹던 습관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그렇게 저는 그동안 한 번도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작은 재주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플레이팅이었어요. 그동안 요리에 재능이 없음을 매 순간 확인만 하고 알게 모르게 구박만 받아왔지, 요리와 관련한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와! 어쩜 이렇게나 예쁘게 내어 먹어요?"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감탄, sns는 정말 온 세계로 퍼져나갔고 살면서 전혀 받지 못했던 칭찬과 인정을 받아보며, 제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능력까지 발견했으니 정말 살 맛난 요즘이에요. 잘하는 것,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 서니 행복해졌어요. 마음의 행복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고, 마음의 여유는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결심했어요. 저는 고백을 할 거예요. 처음 제가 유명해지게 된 그 요리! 그것은 저의 능력이 아님을요. 어느 날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능력이 생겨 누군가가 해주는 요리가 이렇게 마법처럼 그릇 안에 담긴다고 말이죠. 비난을 하면 받겠어요. 검증을 하라면 하겠어요. 그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플레이팅을 기똥차게 하는 것, 이것은 진짜 제 능력이니까요.

두려운 마음으로 정식으로 발표를 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보라는 출연 제의부터, <신내림 점집>의 스타우트, <호텔 레스토랑>의 플레이팅 디자이너 집업 오퍼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오갔어요. 물론 엄청난 악플도, 엄청난 응원도 함께요.

용기를 내길 잘했어요. 비록 악플도 받지만, 결국 마음 안의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비밀을 털어낼 수 있어 홀가분하네요. 그리고, 정말 해볼 만하다 하는 직업이 생겼어요. 그동안은 정말 이 길은 제 영역이 아니다 생각해서 엄두조차 못 내던 길이었는데 말이죠. 바로, "플레이팅 디자이너"예요.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는 줄 아셨나요? 호텔에서 멋진 요리사들이 요리를 다 해주어요. 그리고 그 맛난 요리를 최고급에 맞추어 아름답게 담아내고 전체 공간을 생각하여 조화롭게 담는 일을 연구하고 하는 것이랍니다. 제가 그 일을 하게 되었어요.

마흔몇 해의 삶을 살아오면서 저는 늘 쭈그리이긴 했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었어요. 비록 결과는 쭈그리여도 과정에 있어서는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결과가 없으니 그저 쭈그리만 남는 것이 개떡 같은 현실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알았어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삶은 어떻게든 희망을 져버리지 않네요. 저는 온 힘을 다하여 플레이팅을 연구하고 모든 잠재능력을 끌어 최선의 아웃풋을 내었어요. 그리고, 이 구역의 플레이팅 여왕으로 군림했답니다. 부끄럽지만,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저를 불러주며,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탈 무렵...

그 무렵...

사라졌어요. 제 초능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요. 

저는 이제 말로 뚝딱 요리를 낼 수 없게 되었어요. 다시 원래의 저로 돌아온 것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 능력을 가진 지 벌써 3년이나 되었네요. 그 3년 사이에 그저 이름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그러나 열심히 살아오던 제게 참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초능력이 없어진 제가 아쉽지 않아요. 비록, 맛은 별로이지만 스스로 요리도 잘해 먹어요. 요리가 너무 심하게 형편없다 하는 날은요? 호호호. 플레이팅으로 때운답니다. 보기는 좋으나 먹기는 별로인 것. 딱 그런 날이죠. 그나저나, 제게 왜 이토록이나 알 수 없는 초능력이 나타났을까요?

저는 생각해요. 그 초능력은 하늘에 계신 엄마가 한껏 쭈그러진 마흔 넘은 딸내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내려주신 선물 같은 능력이 아닐까? 하고요. 요리 싫어하고 못하는데 전업주부로 가지는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 당당해도 된다고,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도 된다고, 요리 따위에 너의 가치를 깎아버리지 말라고! 우리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준 선물 말이에요.

엄마의 사진을 보아요. 활짝 웃고 있는 엄마를요. 누가 그랬던가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고요. 그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한없이 효도하며 함께할 줄 알았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 마음 더 많이 알 줄 알았는데, 반대로 자꾸만 멀어져 가는 사십춘기 딸내미를 바라보며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가졌던 마지막 마음이 제게 선물로 돌아왔나 봐요.

엄마, 미안해.

나는 늘 느렸잖아. 이 사실조차도 이렇게 늦게야 깨달았어. 너무 나 같지 뭐야.

엄마, 고마워.

나는 엄마가 선물로 준 가치로 나로 빛나게 잘 살다가 엄마 만나러 갈게.

이제는 걱정 마.

나는 잘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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