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Jun 22. 2022

어떤 어른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아파트 온라인 카페에 안타까운 글이 올라왔다.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단지 안의 공용공간인 광장에서 일주일에 딱 한번 40분짜리 체육 수업을 하는데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그로 인해, 미취학 아동들은 더위에 큰길을 건너 공용 광장까지 가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평일 늦은 오후, 단지 내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다. 선생님의 인솔 하에 일주일에 딱 한번 이루어지는 수업에 민원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놀랍다. 층간소음이나 간접흡연 등의 이유가 아닌 야외 공용공간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토록이나 참기 힘든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관리소에서 중재를 하지 않고 이들을 쫓아냈다는 대응방식 또한 놀랍다. 어린이라는 시기를 통과한 어른들이 베풀 수 있는 관용의 한계를 마주한다.


"그는 성인이라기보다는 방치된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경우가 아주 흔한 것은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문장이다.


그날의 어린이들은 경험은 어른보다 적은데, 어른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했다. 선생님의 인솔 하에 질서 있게 체육수업을 하다 쫓겨나 더운 날, 멀리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가야 했다.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그들에게는 성장할 공간이 없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 알고 있고 누렸던 사람이 베풀어주는 아량, 관용, 용기를 아이들은 배울 수 있을까? 어쩌다 우리 세상은 이토록이나 자기중심적이고 퍽퍽해졌을까?


어린이는 작지만 엄연한 한 명의 사람이다. 또한, 엄연한 아파트 입주민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세계 구성원으로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 하였던가? 살아있는 동안은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어린이 역시 그러하다.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는 어린이가 찾아오지 않고, 문제 해결이 아닌 차별을 느낀 곳에서 어린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차이는 커질 것이다. 오늘의 어른이 어제의 어린이 시절을 잊고 살아온 결과는, 오늘의 어린이가 내일의 어른이 되어 맞게 될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작가의 이전글 괜찮을 거야. 우리 좋은 생각을 모으며 기다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