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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n 25. 2022

엄마의 손

엄마의 손을 잡고 있노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으니!

아픈 아이와 단 둘이 병원에 남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보호자는 한 명만이 가능했다. 교대도 교체도 불가했다. 이제 이 작은 아이의 모든 것이 내게 달렸다. 책임감과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런 감정들에 정신없이 압도당했다. 두려운 마음을 두고 의지할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아픈 아이뿐이었다. 아이를 재우며 동그란 아이의 이마를 만진다. 혈관주사가 건드려지지 않게 조심스레 아이를 안는다. 작고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면 그제야 하루치의 긴장이 풀렸다. 하루가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아이를 안을 수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아이를 곁에 두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방금 전, 엄마의 수술이 끝났다. 일흔이 훌쩍 넘으신 아버지께서 11시간을 보호자 대기 후에 집으로 오셨다. 간병인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공손히 인사한 후, 홀로 돌아오신 아버지께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엄마가 마취가 깬 후, 많이 힘들어하고 계신다."

병원 예약부터 수술까지 모든 것을 어머니 혼자 하셨다. 모두 힘들 필요 없다며 간병인을 쓰면 될 것 같다 하셨다. 하지만, 안다. 그 내면에는 아버지가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혹시라도 손주가 응급상황이 될 때 아버지라도 계시면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가족들 걱정을 끼치지 않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있었다.

큰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다. 몸이 말을 듣지 않고 힘이 든다. 회복이 오래 걸릴 것 같고 두렵다. 그런데, 잡아줄 손이 없다. 제아무리 씩씩한 우리 엄마라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올 텐데,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목이 멘다.


두려움과 불안함 앞에서 아이를 가만히 안고 마음을 달랬던 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품고 앓고 있을 엄마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있노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나는 나를 천하무적이 되게 만들었던 그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긴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마음을 보낸다. 밖에는 비가 그치고 개구리울음소리, 벌레 울음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손을 잡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삶을 탐험했던 나는, 엄마를 병실에 두고 잡아드리지 못한 손이 미워 잠을 잘 수 없다.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없기에 견딜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엄마를 생각한다. 입원을 하러 가기 전에 가방을 싸며 씩씩하게 "걱정하지 마라."며 병원으로 향하신 엄마. 엄마의 작은 텃밭의 상추가 화상을 입을까 오후 5시 이후에 물을 주라 이르셨다는 엄마.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엄마의 텃밭 상추들이 녹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우리 엄마는 잘 견뎌내실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를 잡아준 그 손을 가진 엄마, 사십춘기로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들이 앞으로 여러 다른 모양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오랫동안 그럴 수 있다면.


그 시절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노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1985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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