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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12. 2022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소멸 일기

눈을 떴다. 사방이 깜깜하다. 몸이 붕 떠있는 것 같다. 팔을 허우적거려보니 앞으로 나아간다. 심장이 붕 가라앉는 것 같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번쩍!

저 만치서 번쩍이는 빛 한 줄기가 떨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운석이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의 과학 상상 동화책에서 보던 우주의 모습이다.


어떻게 나는 이곳에 와있을까?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잘 있을까? 다시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한 여러 가지 질문을 뒤로하고 깜깜하고 차가운 이곳을 유영한다. 팔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왼쪽으로 움직이니 왼쪽으로 이동한다. 팔을 위로 드니 위로 뜨고, 아래로 내리면 아래로 내려간다. 발을 한번 차면 90도씩 몸의 각도가 변한다.


한참을 깜깜한 이곳을 거닐다 저만치 푸른빛의 지구를 만났다. 파랗고 초록빛의 아름다운 지구의 빛은 실로 신비로롭다. 황홀하게 바라본다. 나는 텅 빈 우주에서 방방 뛴다. 방방 뛰는 발에 방울이 올라온다. 방울, 방울 투명한 방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둘째 아이가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게 방방 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둘째는 두 팔을 몸에 꼭 붙인 채 작은 로켓이 소심하게 발사하듯 공공공 소리를 내며 트램펄린을 뛰곤 했다. 지금 이 방울 안에서도 그런 자세로 공공공 소리가 난다. 안고 싶다. 만지고 싶다. 둘째만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싶다. 이 방울을 만지면 터지지는 않을까?

 보고 싶은 아이가 방울 안에 갇혀 보이는데 나의 섣부른 욕심으로 눈앞에서 사라질 까 두려워 만질 수가 없다. 먼발치에서 푸른 지구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둘째의 방울을 가만히 본다.

둘째는 머릿속에 아픈 것이 들어있다. 그 이후로 좋아하는 방방이를 뛸 수 없었다. 둘째는 축구를 참 좋아하고 잘했다. 몸싸움이 자칫 위험해질까 두려워 당분간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는 일곱 살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이를 한 번만 만져보고 싶었다.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아주 조금만 살짝 건드린다면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의 손이 닿았다. 방울은 톡!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쿵!

심장이 가라앉는다. 온몸에 힘이 풀린다. 팔다리가 축 쳐지자 나의 몸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사방은 온통 암흙뿐. 차가운 기운이 싸하게 몸안으로 파고든다.

안돼! 나를 더 멀리 끌고 가지 마. 여기 지구가 보이는 이 공간에 머물게 해 줘. 제발......

한참을 휘몰아쳐 빨려 들어가다 잠시 멈추었다. 작은 별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별들의 강 한가운데에 있다. 반짝이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황금빛이 아름답다. 은하수일까?


"어쩜 이름이 이렇게 예뻐? 엄마, 은하수래. 은하수. 예쁘지? 이 단어도 내가 수집해야겠어."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첫째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안아~~~"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본다. 그러나, 아이는 없다. 환청이었을까? 혹시나 아까같이 방울이 나오지는 않을까 방방 뛰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별의 강에 떨어졌다. 동심원을 그리며 눈물이 번진다. 반짝이는 별의 강 수면 위로 아이의 모습이 비친다.

'엄미, 사랑해. 이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아이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카톡을 쓰고 있다. 답장을 해줘야 하는데, 나는 이곳에 와 있다. 여전히 카톡에는 읽지 않음을 뜻하는 1이란 숫자가 뜬다. "엄미, 보고 싶어. 엄미, 어디야?" 아이의 카톡은 계속된다. 아이의 표정을 물끄러미 본다. 걱정과 불안이 서린 눈을 본다. 엄마는 이곳에 있다고 잘 살아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 없이도 잘 지내고 있으라고 엄마는 우리 첫째를 믿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별의 강, 동심원이 흐려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손가락을 펼쳐 글자를 써본다. . 손이 반짝이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엄미도. 사랑해!"


다시 혼자다. 까만 배경과 황금빛 별 빛, 파란 지구는 시야에 없고, 깊은 우주 한가운데 나는 떠 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더랬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불과 어제였다. 첫째 아이와 싸우고 잠자리에 든 나를 보고 신랑은 한심과 한숨이 가득한 말을 했다. "책을 그렇게 읽어대면 뭐하냐."

한 아이와는 정 반대의 기질로 사사건건 나의 몸은 불이나고 온몸의 장기가 타들어가듯 몸속 어딘가가 아프다. 다른 아이는 병명이 무엇인지 몰라 불안한 마음과 매일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매 순간 긴장을 담아 살아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조여 온다. 이러다 곧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다.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잠시 상상의 세계에 살 수 있었다. 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글이 쓰고 싶어.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앉아서 쓰고 싶은데 될까?" 전업주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집안일을 미룬 채 무언가 하고 있으면 눈치가 보였다. 용기 내어 신랑에게 아이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잘됐네. 네가 베스트셀러 작가 해서 돈 벌면 되겠어." 비아냥처럼 들리는 이 말도 처음엔 그저 좋았다. "어이~ 작가 양반." 비아냥이라는 것이 확실한 이 말도 작가라는 명칭이 들어가서 속없이 그저 좋았다.


텅 빈 우주 반짝이는 빛이 있으니 쓸 수 있을 것 같다. 쓸 도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남겨야 할까. 몸에 새기고 싶은데, 마음에 담아놓고 싶은데, 생각들이 그저 우주로 흩어지고 만다. 아까워 담고 싶어 재빠르게 쫓아 가보지만 이내 까만 먼지 조각으로 부스러져 사라진다.

마음이 텅 비었다. 그 빈 마음을 채워주던 것들은 늘 작은 것들이었다.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것들. 진심! 진심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은 무거웠다.

이곳에서 내가 텅 비어 아무 데나 떠내려 흘러가지 않으려면 무거워져야 한다. 나의 진심으로 나를 채우리라! 텅 빈 나를 어떻게든 채우고 나면 나는 다시 돌아가리라! 돌아갈 수 없더라도 적어도 진심으로 채워진 지구의 한 부분으로 이 우주에 남겠지! 그거면 되었다고.


진심을 담는다. 아이의 눈빛, 아이가 보아준 사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삶에 있어 늘 진심이었던 것들, 나의 꿈, 내게는 절대 하찮지 않았지만 늘 말하기 하찮아 말하지 못했던 꿈, 힘들 때 받았던 위로의 말, 절대 잊고 싶지 않아 새기고 삼킨 그 말들, 호의의 말, 칭찬의 말, 작아질 때마다 소심히 혼자 꺼내보던 말들, 아이의 행복, 부모님의 행복, 그리고 밉긴 해도 한 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신랑의 행복도 담는다.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것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에서 이렇게 만난 관계를 나는 왠지 다시 알아볼 수 없을 것도 같다. 이제 나는 곧 부스러진다. 어디론가 다시 빨려 들어가며 몸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간다. 진심으로 가득 채웠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진다. 그리고 나의 진심 조각들은 아름다운 유성이 되어 하늘을 수놓는다.


이 불타는 유성이 저 멀리 지구에서도 보일까?

우리 아이들이 이걸 보고 아름다운 우주쇼라 하며 행복해했으면..... 그렇다면 나는 기어코 나의 일부를 더 멋지게 태운다. 온몸을 가득 태워 부스러진다.

소멸되어가는 한 인간의 마음을 담아 우주에 보낸다. 내게 진심을 준 모든 것들에게,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로 나의 마음이 닿는다면.... 그거면 되었다며.... 있는 힘껏 부스러진다.

© güzel,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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