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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18. 2022

가을 편지

낙엽이 내는 말들

가을이 온다. 나뭇잎들은 곧 있을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변신하기 위해 분주하겠지. 이 날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인내하며 견뎌왔을 숱한 날들, 비가 억수로 퍼붓기도 했고, 물 한 모금이 간절해 바싹바싹 마르기도 했고, 뜨거운 볕에도 매서운 추위도 견뎌내며 곧 있을 향연을 준비한다.

색색의 아름다움 안에 단 한 가지도 같은 색은 없다. 어제의 색이 오늘의 색이란 법도 없다. 아침의 색이 저녁의 색이란 법 역시 없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섬세히 변하는 그 아름다운 가을의 물결을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짧은 순간이다. 이 순간이 길었으면... 바래도 본다. 하지만, 길어지면 마주하는 것은 마르고 비틀어진 빛바랜 낙엽뿐. 가장 아름다울 때 툭! 고리를 끊고 자신의 연고에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뚝! 그 소리가 슬퍼 이 가을을 탔다.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못하고 그저 뚝. 담담히 떨어진 나뭇잎이 아쉬워, 바닥만 바라보며 발길에 차이는 나뭇잎을 골라내곤 했다.

 친구들은 아름다운 이파리를 찾아 책갈피로 쓴다 코팅을 하였고, 나는 왠지 모르게 벌레 먹어 파이고 비틀어진 나뭇잎들을 모아 한 구석에 모아두었다. 아무도 잡지 않는 나뭇잎들. 책갈피로 오래오래 간직되지 못할 나뭇잎들. 그러나, 자신의 쓰임을 다하고 떨어진 그 이파리를 보고 있노라면, 주글주글해진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내가 잡던 엄마의 손은 매끈했고, 내가 기억하던 엄마의 향기는 핸드오일이 발라진 고소하고 향긋한 향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 보지 않고 지내온 시간, 그 사이 엄마의 손은 떨어진 낙엽처럼 바싹 마르고 비틀어지고 주글 거 린다. 벌레 먹은 나뭇잎처럼 검버섯도 나있고 점도 많아졌다. 아름답던 엄마의 손을 이렇게 만든 것은 세월이던가. 그 마음 한번 헤아리지 못한 채 뒤늦은 사십춘기로 한 번도 앓지 않고 지나간 사춘기를 뒤엎어버린 나 때문이던가.


가을이 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타던 가을은 늘 화려함 뒤에 오는 쓸쓸함이었다. 화려해본 적도 없었거니와 그마저도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 이야기하거나 하고 싶다 말하면 뒤따라오는 말은 '욕심도 많다.'라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보통 질투라는 형태를 뗬고, 가족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며, 주변에 나를 아낀다 생각했던 자의 목소리 었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돌아보고는 아끼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 '아니야, 다 그냥 해본 거짓말이었어.'로 마음이 버려지곤 했다. 떨어진 낙엽처럼. 그나마 내가 용기 내어 '이거 보세요. 나 이것도 했어요.'라고 한 말에 돌아오는 칼을 그대로 맞이한다.

 낙엽 한 장처럼 얇은 정신상태는 그대로 칼이 관통하고 그렇게 피를 흘리며, 다시는 나의 솔직함을 보이지 않는다 여긴다.

'나 이것도 할 수 있어요.'

'나 이거 솔직히 해보고 싶어요.'

이런 말들은 다시 또 뚝! 떨어져 나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낙엽처럼. 바닥에서 바람에 뒤엉켜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결과를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 말을 한 결과는 늘 다양한 형태의 목소리로 '너는 참 욕심도 많아.' 였기에 다시 말을 삼킨다.

가을이 왔다. 다시 올해 또 삼켜야 할 말들을 생각한다. 뚝! 몸 안의 무언가가 내게서 또 한 번 떨어져 나간다. 히마리 없이.

© joshua_j_woronieck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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