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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05. 2022

가면을 다시 쓴다, 벗는다. 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탈

아픈 아이 앞에서 웃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의 울음이 아이에게 각인되게 하고 싶지 않다. 억지로 웃음을 환히 지어 보이며 아이의 얼굴을 본다. 눈을 빤히 들여다보지 못함은 내 웃음이 거짓인걸 내가 알기 때문이겠지.


가면을 쓰는 것에 이골이 났다.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 울고 싶어도 웃었다. 연기는 거의 프로급이었다. 원하는 대로 그 어디에도 맞춰 끼어들어갈 수 있었다. 무난하게 티 안 나게 미움받지 않게 가면은 나의 힘이었다.


엄마가 되고 힘겹게 피부와도 같던 그 가면을 벗었다 싶었다. 될 대로 돼라, 나의 감정도 중요하다며 대차게 벗어 재꼈었다. 그러나, 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몰랐었다. 이렇게 가면을 또다시 써야만 하는 날들이 오리라는 것을. 아픈 아이에게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들키지 않도록, 웃음 가면을 쓴다. 비록 괜찮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괜찮은 것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라도 벗어두었던 하회탈을 찾아 써야 한다. 눈물을 속으로 삼켜야 한다. 이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며 썼던 가장 어려운 가면극이 되었다.


병실에 있을 때였다. 입원실 옆 베드 다섯 살 아이가 뇌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왔다. 머리를 움직이면 안 되었는데 아이는 이제 고작 다섯 살이었다. 머리를 움직이지 말라는 요청이 버겁다. 물이 마시고 싶어 우는데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마실 수 없었다. 울면 울수록 더 머리가 아프다. 아이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가면을 쓰고 역할극을 만들어 내었다. 높은 톤, 낮은 톤의 높낮이를 오가며 토끼도 되었다 호랑이도 된다. 아이가 잠시 웃으면 아이의 아버지도 크게 웃는다. 동물탈들을 쓴 아버지의 민낯이 보인다. 큰 수술을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딸을 보던 아빠의 표정을.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었던 눈을. 아이는 본다. 아빠가 자신을 보면 활짝 웃으며 즐거운 연극을 하는 모습을.


엄마가 생각났다. 살면서 엄마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단단하고 용기 있는 엄마였다. 내가 겪은 예상치 못한 사고 앞에서도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이 내게는 당연했다. 그런 엄마를 나는 엄마의 노년에 울렸다. 내가 받은 사랑을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한 사랑이 보여 안타까움에 울었고, 울고 있는 나의 내면 아이를 외면하지 못해 소리쳤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시야가 넓어졌다. 좁은 시야로는 보지 못한 것들, 프레임 밖의 것들, 가면 너머의 진짜 얼굴을 이제야 본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노년에 흘린 눈물. 나로 인해 쓴 마음들. 그동안 키워오며 엄마가 흘렸을 내가 몰랐던 눈물들을 외면해서 미안해. "


아이가 무사히 유치원에 갔다. 빈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내가 하는 일은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도와주세요. 제가 제 자리를 찾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바람을 담아 기도를 한다.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 코에 차고 목에 찬다. 그것이 다시 역으로 눈으로 올라오고 나면 눈물은 뜨겁다 못해 쓰다. 쓰디쓴 눈물을 흘린다.


가면을 쓰지 않고 펑펑 운다. 꺽꺽 소리가 나도 잠시 그냥 놔두련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오늘의 일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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