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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01. 2022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

폭포수 같이 비가 오던 날


"엄마, 빠방 놀이하자. 응?"

"응. 호야, 엄마가 설거지하고 빨래까지 널고 놀아줄게. 혼자 좀 놀고 있어."

"응. 엄마 다하고 꼭 불러. 얼른 해야 해."


착하게도 아이는 혼자 자동차를 굴리며 논다. 이내 조용해져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자기 베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지 않는 녀석인데 피곤하긴 했나 보다. 잘 자면 좋지 싶다가도 어디가 안 좋은가? 이내 걱정이 된다. 불안함이 슬금슬금 나를 덮쳐온다.


  며칠 전, 유치원에서 토를 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뒤로 아이는 또다시 계속 토를 하고 머리가 아프다 했다. 퇴원 시 받은 비상전화로 문의해보니 증상이 계속되면 일단은 응급실을 와서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밖에는 비가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들이치는 비를 바라보며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 천둥으로 대신했다. 주저앉은 채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을 빗물 대신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번개가 번쩍여 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깨서 토를 한바탕 한 후 다시 잠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잔다. 자다 깨서는 또다시 울고 잠이 들면 고요해진다. 지난번과 비슷한 울음소리라 마음이 불안하다. 덜덜 떨리는 손과 발을 잠재우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병원 가방을 챙긴다. 첫째 아이를 불러 미리 이야기해둔다. 엄마가 없을 경우의 시나리오를 읊는다. 요 며칠 사이 부쩍 성장한 첫째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잠든 동생 머릿결에 가서 "호오~ 호오~" 입김을 분다.

  창에는 비가 들이쳐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눈 안에 잔뜩 고인 눈물은 참고 참다 결국 터진다. 첫째에게 들킬세라 얼른 고개를 돌려 닦는다.


  두렵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서 불안하고 아무 일도 없어야 해서 더 무섭다. 병원에서 단 한 명의 보호자로서 모든 걸 해내야 할 걸 알기에 숨이 막히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웃어야 해서 자신이 없다. 주저앉고 싶은 상황에서 잡을 손이라고는 작디작은 아이의 손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그런 아이에게 강인하고 씩씩한 엄마의 모습으로 남지 못할까 봐 두렵다.


  하지만, 결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 해결 방도가 있을 것이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우편함에 성수를 두고 갔다.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서 떠 온 성수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말의 힘. 생각의 힘. 기도의 힘. 그것들의 힘을 담는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는다. 보내준 마음을 담아 손을 내민다. 성수를 손에 한 방울 똑 떨어뜨린다. 잠든 아이의 머리에 그 손을 가만히 올린다.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눈물이 똑. 하고 아이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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