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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n 20. 2022

완벽한 하루는 없었지만 완벽한 순간은 존재했다.

병실 일지

아이가 좋아하는 여우 인형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부드러운 털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황폐한 나에 비해, 인형은 언제나 그렇듯 보들보들하다. 털의 섬세한 방향과 밝은 주황색이 그대로였다. 여우 인형은 병원 입원실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보드라운 털은 조용히 자기의 습성을 지켰다. 이 인형은 이곳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아이에게 낯선 병원의 두려움을 덜어가고, 우리 집을 느끼게 하고, 나긋나긋하고 보드라운 재질로 아이의 심리를 어루만져주기에......

'여우를 데려오기를 잘했다. '

나 역시, 그곳에서 마음 기댈 곳 없이 불안할 때면 여우를 가만히 안아보곤 했다. 갈 곳 없지만, 기댈 마음이 있어 다행히다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완벽한 하루는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완벽한 순간들은 존재했다.

이를테면, 잠든 아이를 병실 침대에 눕힌 후, 여우를 가슴에 안으며 일기를 쓰던 순간들.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감사하던 순간들.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에 감사하며 눈물 흘리던 순간들. 이 순간들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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