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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5. 2022

그날(1)

괜찮을 거야. 우리 좋은 생각을 모으며 기다리자.(1)


2022.6.11 토요일 밤 10시


응급 MRI실 앞이다. 다섯 시 반에 왔으니 무려 다섯 시간을 대기한 후, 드디어 아이는 검사를 받는다.


"엄마, 이제 뭐한대?"

"응. 호 머릿속 아야를 보려고 검사하러 갈 거야."

"얼마나 한대? 엄마도 같이 가?"

"오래 하지만 호가 코 잘 거야. 잘 자고 일어나면 검사가 끝나 있을 거야. 엄마가 옆에 있을게."


잠들기 직전까지 베드에서 "어디 가는 거야?" 묻더니 기척도 없이 잔다. 부디 깨지 말기를. 아이를 괴롭히는 원인모를 두통의 원인을 찾을 수만 있기를. 아이를 괴롭히는 구토의 원인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쁜 아이의 미소를 마음에 담는다. 꿈처럼 환한 그 미소를 가득 기다린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아.


보호자는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말에 나왔다. 아이가 보고 싶다. 우리 아가, 검사 잘 받고 오길. 검사 결과는 괜찮겠지만, 무엇이든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것이길, 그리고 아픈 것을 고쳐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일곱 살 막내가 아프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괴로워한다. 원인을 모른다.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 아이는 아픔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보는 나는 무력감에 힘들어했다. 두 번의 응급실 후 정밀 검사를 받는다. 응급실 진료를 보기까지도 정밀검사를 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아이를 안으며 심장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아이의 동그란 이마를 보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아이의 귀여운 눈빛을 만나며 잠시나마 상상 속 일탈을 꿈꿨다. 내 삶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무서운 상상이 끼어드려 할 때, 애써 쫓아내기보다 지금에 감사했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한 상황이 되는 무시무시한 진실 앞에서 한없이 겸손하게 상황을 맞는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다시 건강히 나의 옆에서 코 자고 뛰어놀겠지. 다만, 이 마음은 영원히 가슴에 박혀 잊지 않고 아이를 사랑할 힘이 되기를. 아이를 대하는 초심을 찾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를 남긴다.



2022년 6월 12일 일요일 오전 10시


"호 보호자님."

"네"

"MRI 판독 결과 중뇌 부위에 이상 병변이 발생하였습니다. 혈관종 혹은 종양으로 의심되는데 자세한 것은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과 확인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응급실에 온 지 16시간 만이다. 이 말을 들은 후, 아직까지도 아무 이야기가 없다. 그 사이 응급실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왔다 갔고, 오전 7시경이 되자 대기실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고요한 순간들도 맞이하였다. 진정제를 맞고 잠든 아이의 얼굴이 울렁이며 물결친다. 지금 눈물이 쏟아지면 마음까지 우르르 무너질 터! 억지로 정신을 차려 아이의 상태를 살핀다. 다행히 진정제 때문인지 내리 자며 머리 아프다 울며 깨진 않는다.


'무슨 말이 든 일단 이야기를 듣고 보자.'

쓰린 위를 움켜쥐며 기다린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16시간째 이곳이다. 온몸이 바싹바싹 마른다.'무슨 말이든 좋은 결과를 듣고 귀가할 수 있어야 할 텐데...'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른다. 마침, 아이가 잠에서 깼다.


"머리 아파."

말은 하였지만 울지 않는다.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며 두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어쩐지 좋은 결과를 듣고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아이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선들을 본다. 아이가 눈을 뜬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

"그래. 우리 여기 너무 오래 있었다. 곧 갈 수 있을 거야. 힘들지?"



결국, 입원을 했다.

아이의 뇌는 의사가 이야기한 대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1) 혈관성 병변이거나 (2) 종양성 병변이거나. 이미 뇌출혈이 발생한 상태여서 입원을 하여 좀 더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집에 가고 싶던 아이는 낙심을 하고,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가자며 애써 마음 달래던 나 역시도 마음이 무너진다.


입원을 위한 준비로 인해 잠시 신랑과 응급 실안에서 교대를 하고 빈 집에 왔다. 아이가 즐겨 타던 자전거가 현관에 있다. 자전거를 빼내며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겹쳐진다. 빈 집에 들어온다. 아이 없는 아이의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입원 가방을 급하게 싼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트렁크에 집어넣는다. 비로소 눈물이 터진다. 가슴이 욱신거린다. 욱욱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는다.

'대신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

'제발 괜찮아야 할 텐데......'

'어쩌다 이런 일이......'

'다시 이 자전거를 신나게 탈 수 있을까?'


간절히 이틀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로. 간절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


코로나로 인하여 응급실과 동일하게 병실 또한 보호자는 지정된 1인만 가능하다. 교체도 교대도 되지 않는다. 아이와 둘이 남은 소아병동에서 이제 이 아이의 케어는 오롯이 나의 몫. 책임감과 걱정과 불안함이 온몸을 뒤덮는다.


며칠 밤 두통과 구토로 잠 못 자던 아이는 기절하여 잠이 들었고, 며칠 밤 그런 아이를 돌보며 걱정하던 나 역시 기절하여 잠이 들었다. 그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떠 보면 우리는 병실 안이었고 아이에게는 들이닥칠 온갖 무서운 가능성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수시로 눈물이 났지만 어떻게든 아이 앞에서는 씩씩해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머리 아파." 외치는 우리 아이의 소리에 한번 깨고, "머리 아파." 외치는 옆 베드 아이의 소리에 한번 깨며 긴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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