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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5. 2022

그날(2)

괜찮을 거야. 우리 좋은 생각을 모으며 기다리자.(2)

2022.6.13 월요일


아침 7시, 옆 베드의 아가는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아이를 베드에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며 보호자에게 인사를 나눈다.

  "수술 잘 될 거예요."

아이는 고작 다섯 살, 한창 예쁜 아이의 머리에 관이 꽂힐 것이고, 수술은 모두 다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쁜 그 녀석은 이제 "머리 아파"라는 울부짖음이 아닌,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라는 서러운 울음이 아닌, 가장 다섯 살 다운, 아이답고 즐거운 말들을 하게 될 것이다.


"호 어린이 검사 가겠습니다."

"지금 이상 병변 확인 부위가 시신경과 왼쪽을 관할하는 부분을 누르고 있어 안과 검사가 예정되어있습니다."

  호와 안과 외래 앞에서 대기 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시야는 잘 보존되고 있다. 난시를 제외하고는 시력도 큰 문제는 없다. 아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배가 고파한 입 먹으면 바로 구역질을 한다. 그러나, 머리가 아프다고 지르던 비명은 더 이상 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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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CT 비수면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네. 제가 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재우고 찍으면 금식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힘들 것 같아서요."


"호야, 우리 우주비행사가 한번 되어 볼까?"

"나 우주에 가?"

"자, 여기 봐봐. 우리 이 기계 안에 들어갈 거야. 우주 비행사처럼 갑옷도 입고. 웅~~ 소리도 날 거야. 엄마가 같이 옆에 있어줄게. 딱 하나만 약속해줘. 호가 절대로 움직이면 안 돼. 안 움직이면 딱 5분이면 끝난대. 할 수 있겠지?"

"응! 해볼게."


외래 CT실 앞, 호를 보더니 간호사 선생님들마다 물어본다.

"할 수 있을까?"

CT실 의사 선생님께서 부른다.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선생님께서 고개를 숙여 아이의 눈을 본다.


"호야, 선생님이 처음에 물었었어. "아이를 재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자, 병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아이가 너무 의젓하다고 아마 잘하고 올 거라고 믿어도 된다고 하셨어. 잘할 수 있겠지?"


호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 선생님이 방사선 방지 옷을 입혀주신다.

"우주 비행사 옷 장착."

아이가 기계에 눕는다.

"우주 비행선 탑승."

이제 비행선은 움직일 것이다. 우주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아이가 움직이지 않기를, 무섭고 힘들겠지만 그 시간 잘 견뎌주어 검사 잘 끝낼 수 있기를 화살기도한다.

혈관주사에 조영제를 투입한다.

"우주로 출발!"


단 한 번의 움직임 없이 성공적으로 CT촬영을 마쳤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모두 박수를 쳐 주신다. 힘들 수 있는 검사를 우주비행선에 탑승하는 하나의 멋진 경험으로 추억하게 해 주신 의료진께, 아이의 눈을 맞추어주며 잘해보자고 믿어주는 의료진께, 그런 마음을 가슴에 담고 단 한 번의 움직임 없이 그걸 해준 만 여섯 살 우리 아이에게, 모두에게 감사하여 가슴이 뜨끈해진다.

내 몸에도 뜨거운 피가 온몸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눈물조차 뜨겁다. 마침 아이도 외친다.

"엄마, 몸이 너무 뜨거워."

의사 선생님께서 조영제를 넣어 좀 덥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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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어머니, 호가 코로나는 음성이지만 일반 감기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감염방지를 위해 일인실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 일인실로 쫓겨났다. 부지런히 짐을 싸서 이사를 하고 새롭게 짐을 푼 방에는 창문이 있다. 하늘이 보인다. 저 멀리 예전에 우리가 살던 우리의 집터들이 보인다. 아이가 뛰놀던 공원도 보인다.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다. 파란 하늘을 보며 하늘에 빈다.


'부디, 부디 종양이 아니게 해 주세요. 혈관성이라도 치료가 잘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아이는 도로를 하염없이 본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 창문 바로 앞으로 보이는 도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포켓몬 카드를 열심히 센다. 지루할 수 있는 이 시간들 아이가 견딜 수 있는 즐거운 거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이제 금식이 풀려 조금씩 먹을 수 있는데 처음으로 토하지 않고 죽을 먹었다. 아이가 먹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이제 머리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 아이를 괴롭히던 끔찍한 두통이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외출할 때면 병원 앞 도로로 가자고 한다. 거기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도로 앞에 산책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의사 선생님이 다녀가셨다. 요약하자면 이미 뇌출혈이 있었고 현재 MRI와 CT로는 확실한 판단이 어려워 정밀 MRI를 추후 더 해야 하겠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두 가지다. (1) 혈관성 병변(출혈을 동반한 혈관 기형)이거나 (2) 뇌종양일 수 있다고 한다. (1) 혈관기형의 경우에는 수술, 치료가 어렵고 힘든 위치라고 하고, (2) 뇌종양의 경우에는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1) 혈관성의 경우에 더 가능성을 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의 당장의 증상이 호전되면 퇴원 후, 외래로 검사를 하되 증상 발현 시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작스레 벌어진 일련의 일들에 겨우 붙들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나의 일이었으면 좋았을걸,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았을 걸, 이제 겨우 만으로 여섯 해를 살아온 아이가 어린 나이에 짊어지고 갈 짐이 너무 크지 않기를...... 무엇이 되었든 치료가 잘 되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의료기술이 좋으니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믿음처럼 아이를 잘 치료해주실 것이므로.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어떻게든 추적하고, 수술하고, 치료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다만, 그 과정이 이제 겨우 여섯 해를 꽉 채워 살아온 아이가 견딜 만 하기를.... 바라면서 하나씩 욕심이 붙는다. 부디, 최선의 경우로, 아무 일 없이 뇌출혈이 잘 흡수되어 추적관찰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린다.


다음 달, 검사 전까지 불안한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음 달, 검사 전까지 아이와의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음 달, 검사 전까지 아이가 재발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다음 달이 되어 검사 결과는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 저녁, 첫째 아이와 아이 아빠와 아이 외할아버지가 잠시 다녀갔다. 병원 정원에서 잠시 만난 그 짧은 순간이 아이에게는 소중하다.

"엄마, 언제 집에 가?"

"집에 가고 싶지?"

"응. 아빠도 보고 싶어. 누나도 보고 싶어."

"그래. 이제 우리 많이 나았으니, 또 다른 검사 없으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아이를 꼭 안고 잠이 들었다. 아이는 꿈속에서 아빠를 만났는지, 잠꼬대로 아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한다. 이것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2022년 6월 15일 수요일


퇴원 결정이 났다.

다음 달 정밀 MRI일정도 잡혔다.


아이와 함께 편지를 쓴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는다. 아이는 수줍게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편지를 전한다. 병원에 있는 동안, 칭찬도 많이 받고 인사도 많이 받고 따뜻함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음에 커다란 마음의 빚을 진다.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와는 7월 중순, 검사 때 외래에서 다시 보기로 했다. 그 사이 건강하게 잘 있으라고 한다.

'감사합니다. 부디, 아이가 무사히 최상의 시나리오로 추후 필로 업이 될 수 있길 빌어요. 신뢰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치료 잘해주세요.'

마음으로 눈으로 간절한 마음을 보낸다.


퇴원 수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병실을 둘러본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이렇게 증상 호전으로 퇴원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곳의 다른 어린이들도 빨리 나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감사하게 되는 곳,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내가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흘려보낸 일상이 얼마나 귀중했는지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대해야 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곳. 그렇게 이곳을 나온다.


"병동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어렵고 힘든 마음 따뜻이 살펴주시며

진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치고 힘드실 텐데 늘 웃으며

아이에게 인사해주셔 감사합니다.

귀찮을 수 있고 많이 들으셨을 반복된 질문에

매 순간 진심으로 답해주셔 감사합니다.

긴장되고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내주신 미소와, 진심 어린 질의응답과 응대, 따뜻한 보살핌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증상이 호전되어 갑니다.

마음 한 곳에 이곳에서 받은 진심을 기억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실의 어린이들 모두 빠른 쾌유를 빕니다.


호 엄마 올림."


2022년 6월 16일 목요일


며칠 동안의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며 이십이 년이라는 세월 후에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나의 가장 좋은 벗이어서 감사하다." 고. 의지할 수 있는 작은 끈들을 잡는다. 마음을 써준 가족들, 위로를 보내준 친구들, 진심으로 기도해준 이웃들, 홀로 남은 첫째를 돌봐주신 부모님, 병원비에 보태라고 비용을 보내주신 친척들, 아이를 위해 물심양면 알아봐 주신 친척들, 아이를 응원해 준 엄마 사람 친구들, 첫째의 등하교를 보아주며 놀이터 놀이까지 보내준 이웃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에 무너져 펑펑 울고 있을 때 안아준 글쓰기를 함께했던 언니들, 현재 같이 글 쓰는 언니들, 채팅으로 댓글로 안부 물어봐주신 언니들이 곁에 있다. 그들이 하나같이 마음을 보내준다. 간절함은 닿을 것이다.


7월 중순 검사 전까지 부디 재발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가장 일곱 살 다운 여름을 아이가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알아서 다행인 거야.

모두 다 괜찮을 거야.


오늘 아침, 일어난 아이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엎드린 채 감싸 쥔 모양새로 인해 다시금 가슴이 털썩 내려앉으려 할 때,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지금 좋아하는 생각을 만들고 있는 중이야."

아이는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을 담아 하루를 산다. 나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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